'Review'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20.05.12 FACTFULNESS
  2. 2012.11.18 광해 1
  3. 2011.08.15 시대가 부여한 잔혹한 운명에도 생을 이어간 한 여인의 이야기<그을린 사랑>
  4. 2011.06.26 Love me, if you dare 1
  5. 2010.09.1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6. 2010.05.16 [지식인마을30]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7. 2010.02.17 눈먼 시계공
  8. 2009.05.04 인간 연습
  9.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10. 2009.05.04 친절한 복희씨

FACTFULNESS

스캔한 문서 2.pdf
2.76MB

평소 취향이 전혀 아니던 책을 친구의 추천과 코로나의 지루함때문에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게 읽고 무려 리뷰를 쓰기에 이르렀다.

 

내가 어릴 때에만 해도 뉴스는 진실과 사실을 보도한다고 믿었다. 

뉴스와 신문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기사의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읽으려고 애썼다. 

더더욱이 사설은 글쓴이의 주관적 에세이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왜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이해하려 애썼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비판적 글읽기에 대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비판적으로 읽는다. 

그들이 전적으로 사실을 보도할 것으로도, 또 쌍방의 입장에 대해 고르게 균형있게 보도할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의 양은 내가 어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아졌다. 기사의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독자로서 필요한 비판적 글읽기의 역량은 커져만 간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절실히 알면서도 기사나 세상을 어떤 식으로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기란 쉽지 않다. 대체로 숫자나 그래프를 제시할 때에도 제시하지 않는 그래프를 상상한다던지, 그래프에서 어떤 부분을 제시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던지 어설프게 가지고 있는 기준은 있으나 구체적인 길잡이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팩트풀니스에서는 언론이나 세상이, 또 대중이 쉽게 오해할 수 있는 10가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내가 세상을 이해할 때 주의할 점을 체계적으로 알려주었다. 

이 10가지 이유를 차례로 따라가며 나는 대체로 나 역시 비슷한 오해의 현장을 목격했던 각각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었으며, 현재 코로나 사태에도 대입할만한 몇 가지 지점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언론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던지, 정치인들이 문제를 과장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평범하게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사안에 주목할 수 없는 이유라던지 정치인들이 왜 문제를 과장할 수밖에 없는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다만 읽는 사람들은 그러한 배경을 잘 인식하며 과도하게 공포를 가진다던지 긴급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사실의 지점을 여러 데이터로 잘 파악하고 세상이 꾸준히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면 우리가 내리는 잘못된 결정 등의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 10가지 이유를 마지막에 그림으로 잘 정리해두었기에 찍어서 함께 첨부해둔다. 

 

(+덧, 최근에 '세습중산층사회' 라는 책에서 이제 1:99의 빈부 차가 아니라 20:80의 소득 격차를 이야기했는데, 이 책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극빈층이 아직도 세상의 대다수를 이루는 것은 아니며 현재 2,3단계에 이른 중산층 국가 및 사회가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역시 두 책의 저자가 같은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2040년의 전망에서는 3단계에 이른 국가들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우리가 마치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것처럼 매사에 불안하거나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0) 2010.09.10
[지식인마을30]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0) 2010.05.16
눈먼 시계공  (0) 2010.02.17
인간 연습  (0)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0) 2009.05.04

광해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8.4
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김인권, 장광
정보
드라마, 시대극 | 한국 | 131 분 | 2012-09-13

 

그 유명한 영화 '광해'를 나는 이제서야 보았다.

어릴 때는 나는 광해군을 폭군이라 배웠다. 연산군과 더불어 조선의 2대 폭군.

그러나 자라면서 새롭게 해석한 역사서를 읽게 되었고, 최근에는 연산군과는 달리 광해군에 대해 재평가하는 흐름이 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 역시 당시의 국제 정세와 조선 내부의 여러 상황을 아울러 보았을 때, 광해군은 폭군이라기보다는 적극적이며 개혁적인 왕이었으며, 다만 기어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왕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아 그간 오랜 세월 오해받아온 왕이라 판단하게 되었다.

 

영화 '광해'는 바로 그러한 최근의 역사적 재해석을 토대로 노골적으로 광해군을 편드는 영화이다.

목숨을 위협받아온 광해군이 자객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흉내내는 광대를 데려와 허수아비 왕 노릇을 하게 하다, 잠시 몸져 누운 사이 그가 보름간 왕 노릇을 대신하게 된다는 내용은 그럴듯하면서도 역사적 사실들과 맥락을 잘 맞추어 재미를 더한다. 광해군의 선정으로 평가되는 대동법 시행이나 중립외교 시행 등은 광해군의 업적이 아니라 그 광대가 했던 것이며, 때로 폐위의 이유가 되는 왕 답지 않은 처신과 기행 등은 그 역시 왕이 아니라 광대였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보면서도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는 역시 또 하나의 영웅만들기를 통해 재미를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새롭게 재해석되는 조선의 왕들은 모두 비루하기 짝이 없다. 아니, 비단 왕 뿐 아니라 그 어떤 위인전의 위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 시절 완벽에 가깝게 보이던 위인들은 사실은 숨겨진 단점이 있거나, 그들 역시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 드러난 사실이다. 특히 요즈음 들어 기존의 프레임을 깨부수는 작업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작업들로 기존의 위인들은 그 지위를 박탈당했으며, 이전에는 평가절하되던 이들이 도리어 추앙되는 등의 일들을 통해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은 기존의 절대 권력자인 왕이나 위인들의 약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도리어 안도하고 위안을 얻는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일종의 조소가 깔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를 뒤집어 엎을만한 영웅(히어로)를 강력이 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체제를 뒤흔들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대한 염원.

 

광해군은 재평가를 통해 기존의 평가처럼 그저 악하기만 했던 폭군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기존 평가가 다 거짓일 수는 없다. 그는 일부 폭력적인 성향을 띄었을 수도 있고, 고집이 세어 주변 사람들을 말을 잘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그의 모든 행보를 '광대가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치환해 버린다. 지나친 비약일 수 있으나 광대의 기행과 맞물려 광해군은 기존의 폭군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도리어 '조선의 훌륭한 왕'이라는 느낌마저 가지게 한다. 맨 마지막 감독의 문장 몇 마디는 특히 그러한 느낌을 더한다. 광해군은 유일하게 명에게 맞선 조선의 왕이라는 문장.

물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광해군의 이미지를 송두리째 바꾸고자 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단순히 스토리가 재미있고, 연기자가 연기를 잘한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이러한 심리가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view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가 부여한 잔혹한 운명에도 생을 이어간 한 여인의 이야기<그을린 사랑>  (0) 2011.08.15
Love me, if you dare  (1) 2011.06.26
고하토  (0) 2009.05.04
봄날은 간다  (0) 2009.05.04

시대가 부여한 잔혹한 운명에도 생을 이어간 한 여인의 이야기<그을린 사랑>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고...

사람들은 사랑할 때도 '흥분'을 하고, 미워할 때도 '흥분'을 하고,

즐거울 때도 '흥분'을 하고, 화가 날 때조차 '흥분'을 한다.

비단 '흥분'이라는 상태 뿐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각자 너무나

다른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는 의외로 매우 닮은 현상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감정들은 서로 닮았고 닿아 있다.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영화 '그을린 사랑'은 중동의 극단적인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하나의 원인 변수에 의해서 벌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비극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어머니에게 성애를 느끼는 오이디푸스까지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한 여인이 한 남성을 만나 사랑을 했다'

라는 단순 명제는 차곡차곡 비극과 절망의 스토리로 나아간다.

여인이 사랑한 그 남성은 여인의 가족에게 살해당하고, 그 여인은

그의 아들을 낳고, 억지로 헤어졌다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친아들에게 잔인하게 강간당해 또다시 쌍둥이를 낳고,

그 쌍둥이를 키우는 일련의 스토리는 이미 정상적인 삶의

스펙트럼을 한참이나 벗어났기에 소름끼칠만큼 비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떤 삶의 역경 속에서도 여인은 지지 않고 일어서려 했으나,

시대와 운명은 그녀에게 잔혹했다.

 

후에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우리는 그녀의 이 극단적인 감정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극도의 미움과 극도의 애정.

그토록이나 농도 진한 두 개의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내면에 품고 그녀는 어떻게 살아갔던 것일까.

 

삶과 운명은 때로 너무나 잔인하다.

그러나 그 잔인함조차 의도치 아니하였고, 또한 인식치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것 같다.

 

이러한 비극은 그러나 이 이야기 속 뿐 아니라 현재도 어디에선가

더욱 극적으로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비극을 보며 감동을 받고 아름답다 생각하는 이면에는

바로 그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삶을 똑바로 응시하려 줄곧 애쓰던 그 여인의 눈이 자꾸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을 묻고 싶다.

 

당신이 그러한 비극 속에서도 생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 여인은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흘러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냥 그렇게.

굳이 원인을 찾지 않아도 원인은 이미 삶 속에 있다.

라고.

'Review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해  (1) 2012.11.18
Love me, if you dare  (1) 2011.06.26
고하토  (0) 2009.05.04
봄날은 간다  (0) 2009.05.04

Love me, if you dare







약 사흘 전.

 

우연히 어떤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흘 내내 그 영화의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질 않았다.

나는 계속 종일토록 그 영화의 내용을 마음의 언저리에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우연히도 역시 비 내리는 사흘간의 영향이었을지 모른다.

 

마침내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열망이 최대에 다다랐을 때에

나는 그 영화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엇갈리는 타이밍. 마음. 용기.

충분히 이루어져 행복하고 아름다웠을지 모를 두 사람의 운명이

끊임없이 빗겨갈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은 그러나 그저 섬칫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비련의 아름다움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동안도 정말 이 영화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LOVE ME, If you dare.




'Review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해  (1) 2012.11.18
시대가 부여한 잔혹한 운명에도 생을 이어간 한 여인의 이야기<그을린 사랑>  (0) 2011.08.15
고하토  (0) 2009.05.04
봄날은 간다  (0) 2009.05.0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생일선물로 받았던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요즘 읽고 있다.
감옥에서의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그 답답하고 고된 생활 속에서도 
세상과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연히 보인 나비 한 마리, 아이들의 함성 소리, 새벽녘의 빛에도 하나하나 민감히 반응하여 
결국에는 깊이있는 사색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 놀라웠다.

책은 대체로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모은 형식인데, 부모님이나 형수님, 아우, 형, 계수님께 
보낸 편지들의 어투나 내용이 매우 고전적이어서 낯설고 이상스러웠다. 
그러나 언뜻 처음에 보았던 감옥살이의 날짜(1968-1988년)가 그냥 생각하기로는 근대사에 가까우므로 
비교적 최근으로 느껴지지만, 현재 읽고 있는 2/3 지점에서조차(1982년) 나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임을 
생각해보면 그 실제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고작 백 년도 채 못 사는 내가 40여년 전을 최근으로 
여긴다는 것이 얼마나 거만한 태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귀로 몇 백 년 전, 몇 천 년 전, 몇 억 년 전 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거듭 듣다보니 
그 실제의 크기는 망각하고, 그저 숫자 놀음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신영복님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중에 가장 인상적이던 것은 '피서'의 이야기였다. 
피서(避暑)가 아니라 피서(避書)다.
감옥이라는 좁은 곳에 갇혀있다 보면 응당 많은 책을 접하는 것이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계속 발전해가는 좋은 계기가 아닐까 싶지만, 신영복님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대개의 책은 실천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너무나 흰 손에 의하여 집필된 경험의 
간접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객관적 관조와 지적 여과를 거쳐 현장인들의 
체험에 붙어다니기 쉬운 경험의 일면성, 특수성, 우연성 등의 주관적 측면을 지양하여
고도의 보편성을 갖는 체계적 지식으로 정리되기는커녕, 집필자 개인의 관심이나 이해관계 속으로 
도피해버리거나, 전문분야라는 이름 아래 지엽말단을 번다하게 과장하여 근본을
흐려놓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책에서 얻은 지식이 흔히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이기 쉽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고, 실천과 함께 발전하지도 않는 허약한 가설, 
낡은 교조에 불과할 뿐 미래의 실천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분서를 욕할 수만도 없습니다.

                                       (중략)

설령 책에서 무슨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를 옳게 판단하거나 일머리를 알아 
순서 있게 처리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경우가 태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 특유의 
지적 사유욕을 만족시켜 크고 복잡한 머리를 만들어, 사물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의 머리 속을 뒤져
비슷한 지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만 그것으로 외계의 사물에 대치해버리는 습관을 길러놓거나, 
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 대신 권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리된 생각과 실천이다.

돌아보면 무한정 책을 읽기는 하나, 마치 과식한듯 내용을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적이 많고, 
어떤 때는 이 책, 저 책에서 읽은 내용을 마치 내 생각인양 착각했던 적도 있던 것 같다.
어느새 책은 많이 읽는 것이 좋다라고 단정해 버렸다.

 '불에 데이면 아프다'고 글을 통해 아는 것과 실제로 불에 데인 아픔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 많이 다를 것이다.
그저 말과 글을 통해 아는 것을 전부 아는 양 여겨서는 안되겠다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다.


이전에 데이빗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이란 책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난다. 
그 책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저자의 글과 실제 행동이 일치했으며, 
그가 매우 실천적인 삶을 지향했던 데에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비교적 꽤 있으나 정말로 실천적인 사람은 
드문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관조와 게으름으로 삶을 소모해가는 최근의 행보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책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날카롭게 가시 선 마음이 보다 따뜻하고 안정되는 것을 느낀다.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CTFULNESS  (0) 2020.05.12
[지식인마을30]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0) 2010.05.16
눈먼 시계공  (0) 2010.02.17
인간 연습  (0)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0) 2009.05.04

[지식인마을30]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기억을 위한 메모



*프랑크푸르트학파(비판이론)

   - 당대의 주요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해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이론을 구축하기 위해서, 각각의 분과 학문 체계가 갖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경제학, 정치학, 철학, 사회이론, 심리학과 미학 등의 다양한 방법론과 연구 성과들을 결합하여 보다
     다층적인 학제간 (interdisciplinary) 연구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

  - 비판이론의 두 단계
    초기 :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신념을 유지, '전통 이론과 비판이론', 철학, 정치학, 사회과학의 종합에 근거한 현대 사회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의 생산을 목표로 함(1930년대)
    후기 :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신념을 상실, '계몽의 변증법', 인간의 자연 지배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한 역사철학, 철학적
             인류학 및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이 목표(1940년대 이후)



* 순수이성비판, 칸트

  - 우리의 시대는 모든 것을 비판에 회부해야 하는 고유한 비판의 시대이다. 종교는 신성함을 통해서, 입법은 그 위엄을 통해서
    비판을 면제받으려 한다. ...... 그러나 이성은 오직 자신의 자유롭게 공개적인 검사를 견딜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거짓 없는
    존경을 허용한다.



*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는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계몽의 변증법' 中)

   - 인류사의 필연적 결과. 진보적 사유라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계몽'이 사실상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으로 전개되어왔음.
     계몽의 이러한 퇴행적 경향이 이미 인간의 '합리성' 자체에 애초부터 내재하고 있음

   - 인간의 자기보존→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인간에 의한 사회적 지배→인간에 의한 인간의 내적 자연의 지배
      →계몽에 의한 지배의 총체화; 인간에 의한 인간 자체의 말살(자기소외)



* 계몽적 주체의 귀환
 
   - '오디세이아' 관련
      살아남고 싶은 자는 회복될 수 없는 유혹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 유혹을 들을 수 없을 때만의 살아남을 수 있다. 사회는 항상 이를 위해 배려한다. 노동하는 사람은 건강한 몸과 집중된 마음으로 앞만을 보아야 하며 옆에 있는 것은 무시해야 한다. 그들은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 충동마저 그 이상의 노력으로 집요하게 승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실제적이 되는 것이다.('계몽의 변증법' 中)
      오디세우스는 계몽적 주체의 본질인 자기보존을 위해서 자신의 내면적 자연, 즉 자신의 본능과 감정을 억압하며 세이렌의 노래로 상징되는 '행복에의 약속'을 단호히 포기했다. 따라서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볼 때, 계몽적 주체의 자기유지는 자기부정, 즉 자신의 내적 욕망과 충동을 부정하고 억압함으로써 얻은 귀결이다. 결국 문명의 역사는 계몽적 주체의 자기희생이 내면화되는 역사이자 체념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 오늘날의 사회는 어떻게 이렇듯 피지배 계급의 무능력과 순응주의를 양산할 수 있었을까?

   - 이성의 지배가 총체화
     →계몽의 이상은 양화의 원리와 계산 가능성의 원리에 기반한 체계를 도출
     →이성은 '도구적 이성, 즉 계산하는 이성'으로 전락

   - 베버의 합리화론
     오늘날 : '가치 합리성(실질적 합리성) < 목적 합리성(형식적 합리성)' ⇒ 가치의 상실, 자유의 상실

   - 동일성 원리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하는 지배 원리
     →대상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개별성을 무시하고 비동일적인 것을 동일성 속에 포섭시킴. 서로 다른 타자를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보편이라는 이름하에 특수를 말살시킨다.

   - 동일성 원리의 총체적 지배
      ① 외적 자연의 지배에 적용된 동일성 사고 : 개념적 인식
      ② 사회적 지배에 적용된 동일성 사고        : 상품 생산 사회의 교환 원리
      ③ 내적 자연의 지배에 적용된 동일성 사고 : 문화산업으로서의 대중문화
         (※ '대중문화' 대신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고안해냄. 대중문화라는 표현의 경우 '대중 스스로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겨난 문화'라는 긍정적 뉘앙스를 가짐)

   - 문화산업론 中
      문화산업은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고약한 방식으로 실현시켰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 가능하며 개인은 교체 가능한 복제품에 불과하다-하나의 개인으로서의 각자는 절대적으로 대체 가능한 존재로서 절대적인 無이다.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CTFULNESS  (0) 2020.05.1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0) 2010.09.10
눈먼 시계공  (0) 2010.02.17
인간 연습  (0)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0) 2009.05.04

눈먼 시계공


■ 책의 차례와 키워드

1.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일
    - 생물의 복잡성. 설계자 X

2. 훌륭한 설계
    - 박쥐, 눈 등

3. 바이오모프의 나라
    -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표현된 진화. 한 점에서 생물에 이르기까지.

4. 진화의 갈림길

5. 유전자의 힘

6. 생명탄생의 기적

7. 건설적 진화

8. 폭발과 나선
    - 폭발(성 선택)과 나선(군비확장경쟁)
    - 정의 피드백과 부의 피드백

9. 구멍 난 단속평형설
    - 용어의 사용에 문제 (점진주의자 vs. 단속론자)
    - 다위의 점진은 反도약설임. 전진설은 속도 일정설과는 다른 의미임.

10. 진정한 생명의 나무는 하나
    - 분류학

11. 경쟁 이론들의 최후
    - 진정한 다윈주의에 대한 설명
    - 라마르크주의, 가짜다윈주의, 창조록, 중립론 등에 대한 명쾌한 반론




■ 감상

  초등학교때부터 배워 온 생물학의 지식이 기억의 언저리를 희미하게 떠돈다.
용불용설, 획득형질, 다윈 등의 단어들은 구분되지 않은 채 모호하게 '진화'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다.
'이기적 유전자'가 깜짝 놀랄만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가득찬 책이었다면, 이 책은 다소 모호하고 이해되지 않던
다윈주의의 내용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 한 권으로 나는 다윈주의 뿐 아니라 중립론, 분류학, 라마르크주의 등에 대한 이해까지 성취할 수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놀라운 비유와 적절한 어휘 사용으로 너무나 명쾌하게 모든 것을 설명한다.

특히 바이오모프로 설명한 생명 진화는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설명이라
진화심리학을 과학적 부분이 다소 배제된 학문으로 여겼던 이전의 인상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의 독특한 유머와 함께한 책의 전반은 매우 즐거웠고, 다윈주의의 이해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다윈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실은 정확하게 다윈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는
예민한 관찰력과 그들의 오해의 순간을 잡아낼만한 순발력이 필요한데 도킨스는 그것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도킨스의 설명을 들으며 어느 부분에 다윈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었고,
그것을 피해가는 방법을 습득하였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가짜 다윈주의자와 진짜 다윈주의자의 대화는 도킨스의 유머와 통쾌한 설명과 예리함이
갖춰진 최고의 부분이라 말하고 싶다.

내가 배워왔던 생물학의 그 공허한 단어들은 모두 무엇이었던가.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0) 2010.09.10
[지식인마을30]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0) 2010.05.16
인간 연습  (0)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0) 2009.05.04
친절한 복희씨  (0) 2009.05.04

인간 연습


인간 연습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정래 (실천문학사, 2006년)
상세보기


몇년 전 '송환'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비전향 장기수.
어쩐지 낯설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그 이름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들이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시쳇말로는 '빨갱이들', 다른 말로는 '남파 간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한에서 활동하다 잡혀 감옥살이를 하며 평생을 살던 간첩들 중에서 끝끝내 전향을 하지 않은
그들은 남북 관계가 평화를 향해 치닫기 시작하던 즈음에 드디어 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얼굴을 보면 그저 이웃집 할아버지같은데, 끝끝내 사회주의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평생을 낭비하는듯 보이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내심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비록 감옥 안에서라지만 남한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았고, 남한 정부의 호의로 돌아가게 된
그들이 희희낙락하여 떠나는 모습하며 북한에 도착한 그들이 신념을 굽히지 않은 영웅으로
대접받아 또다시 북한의 정치공작에 이용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복잡하였던 것 같다.
물론 그에 앞서 타국에 의해 갈라져있는 현재의 실정이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오늘 읽은 '인간 연습'은 그 때 그 영화에서 본 이들과 같은 이른바 '빨갱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조금 다른 것은 송환에서의 이들이 전향을 하지 않아 결국 영웅으로서 북한에 돌아가는
이른바 해피엔딩을 가진 것과는 달리 남한에서의 고문을 견디다 못해 전향을 하여 남한에서는
'빨갱이'로 찍히고, 북한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혀버린 '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순수한 신념 하나만을 무기로 하여 가족도, 자신도 버린 채
삶을 지탱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 딱했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무얼까. 지나치게 순수했고,
지나치게 곧았달까. 그러나 그들이 감옥에서 때묻지 않은 신념을 고이 간직하는 동안, 세상은
변하였고 지나치게 손을 탔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바였다. 처음에는 그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었던
것이 전쟁을 통하고, 비방을 통하고, 서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동안 이미 사상을 넘어서 감정의
문제가 되었고 그 와중에 처음에 품었던 이데올로기나 의지는 온데간데없이 흩어져버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책에서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화합이라던가 남북간의 평화적 교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좀 더 개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대신
한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책의 주인공 윤혁이 결국 삶을 되찾은 것은 이미 무너져버린 자신의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현재까지 굳건한 상대의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
사람이 다름 아니었다. 집 없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아이들과 살갗을 마주대고, 식사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면서 비로소 무수한 세월 동안 찾아왔던 삶을 되찾은 것이다.

책의 제목은 '인간 연습'이다. 비슷한 제목의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있다.
어쩐지 나는 제목에 '인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에 흥미가 생기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이 내 제1의 관심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한 번 뿐이며, 흘러가버린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삶에는 연습이 없다. 인간이란 리허설없이 계속해서 실전과 맞부딪혀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윤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나이를 먹고서도 간직하는 신념은 오래 산 이들의 아집과 다르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회의하며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려 애쓴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는 차츰차츰 인간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런지...
'46개의 염색체를 가졌다고 해서 인간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되려면 인간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윤혁이 바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굽히지 않는 신념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를 포함한 -비전향이든 전향이든-장기수들의
기록된 삶은 모두 연습으로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실전의 기회를 갖도록 할 수는 없는건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나는 그리 성숙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념을 지킨
숭고함은 높이 사지만, 보다 평화로운 시기에 다시 태어나 신념도 지키고, 일신의 평화도 기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더불어 나의 현재 삶도 연습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은 왠지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나는 흘러가는 빠른 시간을 한탄하고,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지만 살아왔던 삶을
모조리 연습으로 치고, 다시 실전을 겪는다는 것은 어쩐지 끔찍한 일이었다. 

인간이란... 삶이란 어쩌면 연습이 필요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극이나 발표와는 달리 삶이란 다소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라도 가치가 결코 덜하지 않기 때문이다.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인마을30]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0) 2010.05.16
눈먼 시계공  (0) 2010.02.17
그리스인 조르바  (0) 2009.05.04
친절한 복희씨  (0) 2009.05.04
파피용  (0)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8년)
상세보기



이따금 예상치 못한 채 거장들의 작품을 대할 때의 기쁨과 놀라움은 어디에도 비길 곳이 없다.
오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인 조르바'를 읽었을 때의 내 마음 역시 그랬다.
이 이야기 속에서 시종일관 침착하게 상황을 응시하는 두목 나으리도,
삶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조르바도 모두 너무나 생생하여 방금 막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반짝이는 물방울을 튀기며 긴박감있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조르바.
그는 '인간' 그 자체였다.
도덕, 관습, 예의, 의무 등은 그에게서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그는 내키는대로 살아왔고, 그 과정에는 단 한번도 거침이 없었다.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어느 독자는 조르바의 엽기적인 기행을 참지 못했는지,
결국에는 책 어귀에다 '미친놈'이라는 메모를 남기고 말았다.
하하, 말 그대로였다.
조르바는 미쳤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용기와 대담함, 무모함 등은 지면과 독자를 압도하였고,
때로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사람은 자기와 이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일단 경계하고
두려워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계를 지나자 이 글의 서술자인 두목(?)처럼
조르바를 부러워하고, 또한 좋아하게 되었다. 뭐, 어디까지나 독자로서의 문제지만...

조르바는 서생처럼 느껴지는 이 글의 화자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이 얼마나 가슴 철렁한 말인가.
조르바의 이 말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양 귓전을 울려서 나는 흥분으로 가슴이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르바는 기인이었지만, 마냥 야만인은 아니었다.
후반부에 나오는 과부의 피살사건이나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에서
마냥 야만인처럼 느껴지는 조르바가 얼마나 인간다운지,
또 문명인인듯 행세하던 이들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잔인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이 조르바는 '인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결코 조르바처럼은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조르바가 두목에게 이야기했듯, 나 역시 자유를 갈망하고 줄을 끊겠다며 큰소리치겠지만,
그저 줄을 무한정 늘릴 뿐이다. 결코 용기있게 줄을 싹둑 잘라내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그러한 조르바의 이야기에 두목은 실망하지 않는다.
그는 대답한다.
조르바가 버찌를 토할 때까지 삼켜 버찌를 이겨냈듯이,
자기는 책을 토할 때까지 삼켜보겠다고...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 얼마나 당당한 대답인지...
그동안 이 작가를 모르고, 이 책을 몰랐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리스 남부의 크레타 섬.
그저 이야기로만 들었던, 막연한 이 곳이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펌프질하며
영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어 가슴이 뛴다.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먼 시계공  (0) 2010.02.17
인간 연습  (0) 2009.05.04
친절한 복희씨  (0) 2009.05.04
파피용  (0) 2009.05.04
참말로 좋은 날  (0) 2009.05.04

친절한 복희씨

친절한 복희씨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박완서 (문학과지성사, 2007년)
상세보기



박완서씨의 '친절한 복희씨'는 역시 세월과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랄까. 전혀 무리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비유와 묘사임에도 감질맛나고 적당한 필치로 삶을 조리하였다. 그 나이에 이르른 소설가여야만 가능한 글들. 최근 젊은 작가들의 다소 혼란스럽고 조금은 감각적인 글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물론 그러한 글들이 재미있고 흥미를 돋우긴 하지만 때로 무리한 비유나 과장된 비약 등이 지나친 평가를 받는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과 경험이 만들어낸듯한, 적당히 풍화되어 이제는 둥글둥글해진 조약들같은 글들을 접하고 나니, 경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 어머니는 책을 거의 읽지 않으시지만, 읽는 내내 어머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연습  (0)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0) 2009.05.04
파피용  (0) 2009.05.04
참말로 좋은 날  (0) 2009.05.04
소유  (0) 2009.05.04
prev 1 2 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