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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01.25 아프리카 여행기 2
  4. 2013.01.25 아프리카 여행기 1

아프리카 여행기 4

 

 

2012.12.26.

 

 

 

 

 

■ 트럭투어 시작

 

 

아침 일찍 일어나 텐트메이트(?) 제시카와 함께 어둠 속에서 텐트를 걷었다.

예상외로 텐트에서의 밤은 아늑하고 괜찮았다.

짐을 모두 꺼내 옆 바닥에 내려놓고 텐트를 천부터 골조에서 해체하고, 그 후 골조를 접었다.

텐트를 모두 정리하고 트럭으로 가니 이미 아침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존이 계란을 부치고,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Y가 쵸베에서 찍은 사진을 구경하기도 하고, 커피를 내려먹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질 좋은 원두의 좋은 커피를 마시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커피는 Mike가 미국에서 공수해온

미국산 원두커피였다.(=ㅅ=a)

 

커피를 마시며 Az와 인사를 했다. Az는 생긴 것은 딱 인도사람처럼 생겼는데, 파키스탄-인도계 영국인으로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였다. 런던에서 헤지펀드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식사준비가 다 되어 우리는 접시를 들고 줄을 섰다.

먹을만큼 음식을 덜어, 간이의자에 앉아 먹었다.

옆에 앉은 Bread에게 아프리카를 여행지로 고른 이유를 물었고, 그가 길게 답했지만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다 먹은 후에는 직접 세 단계에 걸쳐 설거지를 한 후, Flapping이라는 것을 해야 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접시흔들기.

처음에는 Az가 농담을 하거나 장난치는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진지하게 접시를 흔드는 모습을 보며 진지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젖은 상태로 그릇을 넣으면 위생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한 그릇, 요리도구, 포크, 나이프, 컵 등을 모두 물기

한 방울 남지 않도록 계속 흔들어야 했다.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으나 나 역시 동참하여 열심히 흔들었다.

 

 

식사한 그릇과 도구를 모두 함께 정리하고, 드디어 트럭에 올랐다.

짐이 놓여있지 않은 끝에서 두번째 왼쪽 자리에 앉게 되었다.

 

 

↑ 트럭 뒷쪽 모습

 

 

↑ 트럭 앞쪽 모습(좀 지저분하지만.....;;)

 

 

 

 

 

 

■ 고갱의 그림같은 잠비아의 풍경

 

 

 

 

트럭은 루사카를 향해 달렸다.

 

 

22일밤부터 쭉 혼자 지내왔기 때문일까? 트럭을 타고 모두 함께 달리는 그 자체가 너무 신나고 좋았다.

더욱이 혼자였기 때문에 이동도 힘들고, 거의 캠핑장에 갇혀있다시피 했던 것이다.

바깥의 풍경은 낯설고 신기하며 아름다웠다.

 

 

 

↑ 처음으로 트럭에 올라..

 

 

 

 

이 날의 여정은 거의 없었다. 그저 달리고 달려 루사카를 향할 뿐이었다.

 

 

내가 가진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난민, 가난이었다. 그러나 창 밖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의 풍경은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워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초원의 푸르름과 신선한 태양빛.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마치 고갱의 그림처럼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매 순간순간의 장면이 그 자체로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 끝도 없이 이어지는 푸르른 초원

 

 

 

↑ 멀리서 본 마을의 정경

 

 

 

↑ 구릿빛 피부의 잠비아인들

 

 

 

↑ 바라보기 아까울만큼 아름답던 한 순간

 

 

 

↑ 어느 마을의 입구

 

 

↑ 역시 마을로 이어지는 길 위

 

 

 

약 6-7시간의 장거리 드라이브 후 우리는 루사카에 도착하였다. 점심은 중간에 내려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루사카의 쇼핑몰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사기로 하였다. 쇼핑몰은 굉장히 넓고 크고 현대적이었다.

 

 

 

 

나는 별다르게 살 것이 없었기에 구경하다가 물, 벌레약, 비스킷 조금을 샀다.

큰 쇼핑몰이라 다행히 카드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중간 어찌나 정전이 되던지 시간의 반은 쇼핑을 하고, 나머지 반은 어둠 속에서 전기가 다시 들어오길

기다려야 했다. 그런 상황이 매우 코믹하게 느껴졌다.

 

 

 

 

 

 

■ 투어 금액에 대한 의구심

 

 

크게 살 것이 없었기에 나와 Y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해스본과 존, 스티브가 나와 앉아있었다.

Y는 콜라를 한 박스나 샀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한 병씩 주시고 함께 시원한 콜라를 마셨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이 여행의 시스템과 가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한국에서 송금한 돈이 1400$였는데, Y는 10,000$를 냈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그 돈이 비행기값이나 로컬 페이를 포함한 돈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회사의 같은 투어를 하며 어째서 이렇게 상이한 금액을 지불하게 된걸까?

우리는 여행의 과정과 금액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Y는 15년간 거래해온 여행사가 있었고, 그 여행사에 굉장히 친한 친구분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여행사에 아프리카 여행을 의뢰했고, 명세서에 나온대로 지불했을 뿐이라 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이 여행은 한국에서 여행사에서 들은 설명과는 그 내용이 매우 달라 초반에 불만이 컸다고 했다.

늘 호텔에서 자고, 고기만 먹고, 지프에 대여섯명이 함께 여행할 거라고 들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이 여행의 시스템과 매우 달랐다.

나는 이 여행이 마치 스카우트 수련회같은 시스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나날동안 텐트를 쳐야 하고, 직접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도,

이런 거대한 트럭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함께 이동하는 것도 모두 잘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Y는 그렇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Y가 거래해온 여행사가 사기를 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Y는 그 친구라는 분을 굳게 믿고 계셨고,

뭔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려 하셨다. (그러나 결국 몇 일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상황을 다시 파악하게 된다)

 

 

 

 

■ 유레카 캠핑장에서 유레카를 외치다!

 

 

이러한 의구심을 남긴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트럭에 올라 오늘의 캠핑장은 Eureka Campsite로 이동하였다.

유레카 캠핑장은 이름 그대로 입구에서부터 우리에게 유레카를 외치게 했다.

바로 얼룩말들이 캠핑장 안을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 유레카 캠핑장의 얼룩말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날이 매우 흐렸던 것이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다행히 유레카 캠핑장에는 정자같이 생긴 것들이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이 정자같은 것을 맡아 이 안에 텐트를 쳤다. 덕분에 텐트에 레인커버를 칠 필요도, 비에 젖은 텐트를

찝찝하게 접어넣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Az와 Mike, Bread는 정자를 맡지 못했다. 그 이유때문인지 이번 캠핑장에서 Az는 Young과 함께 업그레이드를

해서 캐빈에 머물렀다.

나와 제시카가 텐트를 막 완성한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텐트 밖, 정자 안에서 나와 제시카는 비 내리는 소리를 듣고, 비 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 정자 안에 친 우리의 텐트

 

 

↑ 비 내리는 유레카 캠핑장

 

여행 경험담, 각자의 나라에서 일하는 이야기 등을 거쳐 우리의 화제는 다시 이번 여행으로 옮겨갔다.

나는 호기심에 제시카에게 이 여행을 위해 로컬페이와 비행기값 외에 얼마를 지불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제시카는 800$이라 답했다.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의 1,400$보다도 훨씬 적은 금액이 아닌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에이전시를 통하면서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Y 뿐 아니고 나 역시 말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동안 누군가 무지개가 떴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무지개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지개를 찍기 위해 우산을 찾자 Y가 기막혀하며

비를 맞고서라도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거라며 나를 거의 어거지로 떠밀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카메라에 빗물이 들어갈까 노심초사하며 무지개가 보이는 쪽으로 나갔다.

 

와우.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정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환상동화 안으로라도 들어온듯한 느낌.

무지개는 내가 평생 봐온 그 어떤 무지개보다도 선명하였다.

우리는 또한번 마음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게 되었다.

 

 

 

 

↑ 아름답던 무지개. 자세히 보면 쌍무지개임을 알 수 있다.

 

 

 

↑ 무지개를 잘 찍기 위해 비 맞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3人(토마스, 제시카, Y)

 

 

무지개의 풍경을 마음에, 사진에 담으며 신나하는 동안 서서히 해가 졌다.

우리는 새롭게 합류한 독일인 커플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황소만한 개가 우리 곁을 지켰다. 그렇게 큰 개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검은 개느 개인지, 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저녁을 먹고, 씻은 후 제시카는 바에 잠깐 들른다며 이동했고, 나는 텐트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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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기 3

 

2012.12.25.

 

 

 

 

■ 일행을 기다리며...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20년 전의 오늘은 항상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2012년의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일상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한 챕터를 읽고 샤워하러 갔다. 밤새 땀을 많이 흘렸었다.

샤워를 하고 돌아와서는 돈 계산을 했는데 하면할수록 우울했다.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중 가서는 카드로 계산해야 할 것 같았다.

아프리카가 왜 이리 유럽인들의 휴양지가 되었는지, 왜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돈 생각으로 좀 우울했지만 기운을 내려 애썼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

 

 

 

 

 

↑캠핑장의 럭셔리한 실내수영장.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이미 유명한 휴양대륙이 되어있는듯 했다.

 

 

 

 

일기를 쓰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유시민의 책을 읽고 센델의 정의도 읽고 지난 문자도 보고 하다보니 시간은 잘 갔다.

그러나 10시에 온다던 투어 팀은 12시가 되어도 오질 않고 나는 결국 텐트에서조차 체크아웃하여 쫓겨났다.

짐을 리셉션에 맡기고 어쩔 수 없이 식당에 왔는데 크리스마스라 메뉴가 오로지 하나였다.

정체불명의 비싼 메뉴.

 

 

 

 

시작은 새우 칵테일이라는 메뉴였다.

새우가 야채와 함께 마요네즈 드레싱에 담궈져 있었다. 파르페처럼 꾸며져 나온 것을 보고 난감해졌다.

이것을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 도구도 없이 덩그라니 나온 것을 보니 이름 그대로 칵테일처럼 마시라는 것 같은데 도무지 그 음식을 마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포크를 달라고 하자 찻숟가락을 가져다주었다.

맛은 그냥 그랬다.

삶은 새우를 마요네즈에 담근 맛이었다.

 

 

 

↑ 정체불명의 새우칵테일

 

 

 

 

이제 메인 요리가 나왔다. 커다란 고깃덩이 네 개에 완두콩, 호박, 당근, 감자칩과 밥이었다.

그와 함께 커리용 그릇에 정체불명의 드레싱이 있었다.

드레싱은 땅콩맛이 났는데 꽤 괜찮았다. 문제는 어디에 쓰느 드레싱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이곳저곳 부어먹었다.

 

 

 

음식은 양이 엄청 많고 대체로 기름져서 반을 먹기 전에 이미 배가 불렀다. 그러나 남기기에는 아까웠으므로 꾸역꾸역

먹을 수 있는 데까지 먹었다. 그 결과 고기 세 덩이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먹었다. 고기는 정말 무리였다.

 

 

 

 

↑ 크리스마스 특별 메인 요리 -_-

 

 

 

 

배가 터질 지경까지 먹고 치웠는데 디저트가 있었다.

아마 3만원란 가격을 맛이 아닌 양으로 승부할 셈인 것 같았다.

푸딩이라 이름 붙은 그 음식은 요거트와 빵과 사과였다.

먹고 죽을 지경이 되어도 먹자는 생각에 열심히 먹었다.

 

 

 

 

↑ 역시 정체불명 디저트

 

 

 

 

 

■ 아프리카트래블코팀과의 첫만남

 

 

 

오랜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갑자기 리셉션 직원이 식당으로 나를 부르러왔다.

드디어 아프리카트래블코가 도착했다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반갑던지 허둥거리며 나가다 식당 난간에 다리를 찧었다.

가이드는 해스본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첫인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더 기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양인들 사이에서 왕따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나에게는 꿀같은 소식이었다.

바로 투어그룹 안에 한국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그러나 해스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사람들이 그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해스본과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무척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영어를 할 수 있길 바라며...

물론 나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해스본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잠비아쪽 빅토리아폭포를 보러 갔다고 했다.

일단 트럭을 소개해주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드디어 한달간 나의 함께 여행할 트럭을 마주하였다.

트럭의 첫인상은 사실... 조금 실망이었다.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캠핑장에 머물며 다수의 캠핑카를 보아온 나에게는 기대보다는 조금 이하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약간 실망한 아프리카트래블코의 트럭

 

 

↑ 식사준비가 세팅된 모습. 매 식사 때마다 위와 같이 세팅하여 요리하고 식사한다.

 

 

 

 

어쨌든 나는 또 한달간 여행을 함께 할 두 사람을 만났다.

요리사 존(John)과 운전기사 스티브(Steve)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해스본에게 현지에서 지급하기로 한 로컬페이 410$를

낸 후, 향후 일정에 대해 잠깐 브리핑을 들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잠깐 어떤 독일 할아버지가 트럭에 들렀다. 뭘 두고 간 모양이었다.

이름은 토마스(Thomas)라 하였다.

해스본은 나를 유일한 한국 사람과 같은 텐트를 쓰게 할 모양이었는데, 그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마 그 한국인이 그걸 원치 않을 거라고 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일단 모든 일행이 빅토리아 폭포를 보러 가서 트럭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는 존에게 다가가 요리를 도와줄까 물었다.

그러나 존은 오늘은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존에게 말을 붙이며 대화를 좀 나누다 존이 점점 바빠져 혼자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때였다.

 

내 앞을 익숙한 차림의 한국 아저씨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책을 읽던 나를 보고 그분도 "어?" 하며 바라보았다.

이 분이 바로 그 유일한 한국 사람이었다.

 

 

일단 한국말로 말하는게 좋아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분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 한국인이 2명 온다고 들었는데, 한 명인 점. 또 본인 또래의 한국인일줄 알았는데 굉장히 젊은(???) 여자인 점 등이

당황스러웠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나 역시 이렇게 험난한 아프리카 여행에 부모님 또래의 아저씨께서 오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반가워하며 내 짐을 텐트촌으로 옮겼다.

텐트촌에는 이미 모두 텐트를 다 쳐놓은 상태였다.

나중에 다시 해스본에게 누구와 텐트를 써야 하냐고 물으니 혼자 온 여자가 있으니까 그 여자와 쓰라고 했다.

 

 

모두들 빅토리아 폭포에 갔는데, 그분은 노트북 등을 충전도 해야 하고, 이미 짐바브웨쪽에서 만족할만큼 사진을 찍어서

따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본업은 사진기자이시고,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는 여행사진을 찍어 팔기도 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장비가 어마어마했다.

엄청 좋은 니콘 카메라 두 대에 노트북 하나, 아이패드 등.

어제 그제 빅토리아 폭포랑 내가 함께 하지 못했던 쵸베 국립공원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엄청났다.

내가 찍은 사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헬기에서 찍은 빅토리아 폭포는 그 위용이 크게 달라서 웅장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텐트촌 잔디 위에 나란히 서서 사진 이야기, 한국 이야기, 선거 이야기, 이 여행 이야기 등을 오랜 시간 나누었다.

어디 앉고 싶긴 했는데 이 텐트촌은 개미가 기승이라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빅토리아 폭포로 갔던 나머지 일행들이 돌아왔다.

 

우리의 일행은 아까 위에 언급한 가이드 해스본, 요리사 존, 운전기사 스티브, 나와 유일한 한국인 Y, 독일인 노부부 Thomas와

하이카, 호주에서 온 브레드, 미국의 제시카, 독일 커플 앙드레와 스테파니, 영국에서 온 파키스탄과 인도계 영국인 애즈,

브라질 커플 멘웰라와 크리스였다. 총 15명.

내일 루사카에서 2명이 더 합류한다고 했다. 그럼 총 17명.

 

 

이 중 나는 미국의 제시카와 한 텐트를 쓰게 되었다.

왕따당할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두모두 성격이 엄청 좋아보였다.

 

 

우리는 잠비아 강을 보며 간단히 음료를 마시기로 했다.

 

내가 진절머리내던 식당에서 음료를 주문해 내가 실컷 구경하던 잠비아 강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고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약간 쓸쓸하게 느껴져던 풍경이 이제는 일행이 있어서인지 풍요롭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음료를 들고 일몰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 아름답던 잠비아 강의 일몰

 

 

토마스와 하이카 부부는 원래 독일 저널리스트인데 현재는 아프리카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르완다가 참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라며 칭찬했는데, 아직까지 르완다의 내전과 난민 이미지가 강했던 나에게는 좀 놀라운 이야기였다.

르완다는 심지어 정부에서 비닐봉지 사용도 금지할 정도로 친환경적이며 거리도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그들은 이제껏 Y에게 카메라 배터리를 빌리고 싶었는데, 그가 영어를 하지 못해 빌리지 못했다며 대신 말해달라고 했다.

대신 전해주었더니 Y는 기꺼이 주었다.

내가 합류하여 일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해가 지고 우리는 식사를 하러 트럭 근처로 돌아갔다. 메뉴는 카레.

Y는 여기 식사가 정말 보잘것없다 하였는데 나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정신없어 크게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만 먹었다.

브라질 커플은 둘만의 세계에 빠져 일몰을 감상하느라 식사에 늦었다. 그래서 트럭 청소에 당첨되고 말았다.

 

 

식사 후에는 세 개의 단계를 거쳐 그릇을 설거지해야 했다.

 

설거지까지 마친 후 제시카가 이미 혼자 낮에 쳐놓은 텐트로 들어가 구역을 나눈 후 침낭을 펴 잠이 들었다.

 

 

좋은 일행들을 만난 것 같아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되었다.

왠지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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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기 2

 

 

2012.12.24.

 

 

 

 

■ 빅토리아 폭포로!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하지만 따뜻한 기온(영상 30도 가량)의 이곳 짐바브웨에서는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다.

일찍 잠든 덕분인지 일찍 깨어났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으며 어제 남겨온 피자를 아침으로 먹었다.

내가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는 동안 우리 방에 머물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체크아웃하여 나가버렸다.

나는 여유가 있었으므로 샤워실로 가 씻고 천천히 화장을 했다.

푹 쉬었기 때문에 어제에 비해서는 컨디션이 좋았지만, 감기기운은 여전했다.

시간이 좀 일러 마이클 센델의 '정의'를 한 챕터 읽은 후 짐을 싸 체크아웃을 했다.

짐을 카운터에 맡기기로 했는데 짐의 목록까지 만들어 보관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짐도 맡겼겠다.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빅토리아 폭포로 향했다.

 

 

 

↑내가 머문 Restcamp의 리셉션

 

 

 

가는 길에 Milky의 어쩌고 하는 아프리카 스타일의 석상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꽤 잘 만든 작품이라 눈길이 갔다.

내가 석상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구경하자 누군가가 설명해주겠다며 따라왔다.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고 나서는데 또 다른 이가 붙었다.

차분히 감상할 수 없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이 빠져나오고 말았다.

 

 

 

 

 

 

 

 

 

 

 

 

 

 

 

 

 

 

 

 

빅폴로 가는 길에도 기념품을 파는 여러 삐끼가 붙었는데 그 중 하나는 되도록 친절하게 거절하려 하자, 나이와 결혼여부를

묻는 둥 도가 지나쳤다. 또 게중에는 'I'll have you"라고 말하며 끈질기게 외길을 따라붙는 이도 있어 무척 무서웠다.

 

 

15분쯤 걸었을까. 빅폴 입구에 도착했다. 마치 에버랜드의 사파리 입구와 같은 느낌.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곳은 레알 아프리카! 레알 짐바브웨였다.

이게 진짜다! 같은 느낌이랄까. 입장료는 그새 올랐는지 30$였다. ㅜ_ㅜ

 

 

 

 

↑빅토리아 폭포의 입구

 

 

 

↑30$가 찍힌 입장 티켓

 

 

 

빅폴은 생각보다 컸다. 길을 따라가니 각종 동물들의 두개골을 전시해놓은 것이 보였다.

 

 

 

 

 

 

 

 

 

더 걸어가니 나무 사이로 저 멀리 폭포가 보였다. 그 길은 리빙스톤 상이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아무 생각없이 계속 걸어나간 철책이 가로막았다. 그 길이 아니었다. 다시 뒤로 돌아나오니 폭포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였다.

그 길을 따라 보이는 폭포의 뷰에 '와아~' 하고 감탄하고 나면 더 멋진 뷰가 바로 이어졌다.

 

 

 

 

 

↑폭포로 가는 아름다운 길

 

 

 

↑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빅토리아 폭포

 

 

 

 

 

↑ 리빙스톤 동상.

빅토리아 폭포는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인데 우연히 찾아온 영국인 탐험가가 그 폭포를 찾았다며 발견자라고 동상을 세워주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생각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영국의 입장에서의 탐험가일 뿐. 아프리카에서 빅토리아 폭포는 예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있는 우리 동네의 폭포가 아닌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입장에서의 탐험가인 리빙스톤은 이렇게 동상까지 세워지고 더불어 잠비아의 도시 이름으로 붙여지기까지 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폭포는 그 본모습을 점점 더 드러냈다.

윗쪽에는 물이 별로 없어보이는데 어디에서 온 물인지 신기했다. 낙차에 따라 물은 다양한 모양을 그리며 떨어져내렸고,

때때로 오묘한 물안개로 뒤덮이기도 했다. 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뷰였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여유있게 감상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관조하자면 한 무리의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느라 이리저리 움직여 나도 그들을 피해

비켜주어야 했다. 그들 중 Wild horizon이란 회사에서 온 가이드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며 사진을 찍어주고 자꾸 말을 붙여

부담스러웠다. 그를 마주치지 않느라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 바로 그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

 

 

 

 

 

폭포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이제 슬슬 지친다 생각할 때쯤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짐바브웨는 거기까지였다.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연결하는 철교가 보였고 그 중간에는 번지점프를 위한 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누군가 뛰어내릴까 싶어 좀 기다렸으나 아무도 뛰지 않았다. 나라면 뛸 수 있을까 자문해보았지마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 죽고 싶을만큼 힘들면 바로 이곳에 와서 번지점프를 하자고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직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우울하다 했지만 죽을만큼 힘들진 않은 모양이었다.

 

 

 

 

 

 

↑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잇는 철교

 

 

 

↑ 철교에 드리워진 번지점프줄(흰색)

 

 

 

 

천천히 양산을 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출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편안해보이는 나무등걸이 있어 잠시 앉았다.

앉아서 일기를 쓰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때 어떤 동양인 아주머니가 아기를 안고 다가왔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본인, 중국인을 보았던터라 전혀 기대치 않고 눈인사만 나누었다.

그런데 내가 쓰던 일기에 눈길을 주던 그분이 반갑게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분이세요?"

 

고작 한국을 떠난지 이틀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왜 그리 반갑던지.

자고 있던 아기를 쉬게도 할겸 내 옆에 앉은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시아버지께서 선교활동을 하러 짐바브웨에 계셔서 겸사겸사 왔다는 것이다.

하라레에 몇 일 머물다 오늘 아침 빅폴에 온 참이라 하셨다. 그 분도 광진구쪽에 살고 있으며 본인도 남편과 함께

세종대에서 기독 관련 활동을 한다 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 반가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 시아버지되시는 분과 남편분이 뒤늦게 사진을 찍고 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어째 그 두분의 반응은 여자분과는 좀 달랐다.

다소 무관심과 귀찮음이 느껴져 따라걷다가 중간에 화장실을 가겠다며 인사를 했다.

나의 과민반응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에 편견을 가지고 계신 느낌이었다.

처음은 좋았으나 끝이 씁쓸한 만남이었다.

 

 

 

 

 

 

↑ 길가를 돌아다니는 멧돼지

 

 

 

↑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여자분과 대화하느라 너무 지체되었다. 서둘러 캠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빅폴에만 3시간이나 있었던 것이다.

가는 도중에 어제 먹은 피자집 옆의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버거를 샀다.

테이크아웃인데도 어제처럼 4$였다. 테이크아웃점이라 자리가 없어 밖 나무 그늘에 앉아 먹었다.

혼자 먹자니 모두의 시선을 받는 것 같아 거북했다. 음식을 입 안에 마구 우겨넣었다.

편의점에서 물을 산 후 캠프로 돌아왔다.

문지기는 내 이름까지 부르며 반겨주었다.

택시를 불러주어 국경까지 갔는데 국경은 방금 내가 다녀온 빅폴 바로 옆이 아닌가. 왠지 속은 기분.

 

 

 

 

 

 

↑빅폴 입구의 계단 난간. 이마저도 아프리카의 정취가 솔솔.

 

 

 

 

↑ 철길 앞

 

 

 

 

 

 

↑ 숙소로 돌아가는 길

 

 

 

↑ 테이크아웃 버거가게

 

 

 

 

 

 

Immigration으로 가서 쉽게 출국을 하고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파란택시 기사 하나가 3$를 외쳤으나 그냥 무시했다.

방금 굉장히 가까운 길을 5$나 내고 온 억울한 기분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뿔싸!

국경 철책을 넘는다고 바로 잠비아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필 시간도 태양이 가장 뜨거운 오후 2시!

타는듯한 뙤약볕 아래를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보조가방 2개에 2kg짜리 침낭을 들고 걸어야 했다.

그늘 한 점 없었다.

채 100m도 못가 3$를 부르던 택시기사의 말을 무시했던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돌아갈 수 없었다.

불현듯 어제 스치듯 들었던 리셉션 직원이 설명이 떠올랐다.

짐바브웨쪽으로 2km, 잠비아쪽으로 1km라는...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그 때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짐작대로 국경간 거리였다면 도합 3km를 이렇게 걸어야 했다. 끔찍했으나 별수없었다.

나는 지옥을 경험하며 걷는데 옆에는 택시들이 약이라도 올리듯 씽씽 지나갔다. 3$였는데.... ㅜ_ㅜ 울고 싶었다.

군인들이 군장을 하고 행군하듯 이를 악물고 걸었다.

어깨는 부숴질 것 같았고 온몸은 땀에 젖은데다 열이 올라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죽기 직전이란 생각이 들 때쯤 저 멀리 잠비아 국경이 보였다. 그곳에 도착하니 살 것 같았다.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다.

 

 

 

 

 

 

 

↑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 철교

 

 

 

 

↑ 철교 위에서 바라본 빅토리아 폭포

 

 

 

 

 

↑ 잠비아의 Immgraion 창구

 

 

 

 

 

 

국경에 다다르자마자 택시 삐끼들이 붙었다. 이제는 어떤 경우라도 택시 삐끼를 물리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잠비아 국경 사무소는 에어컨을 틀어놓아 매우 시원했다. 친절한 여자분이 비자 업무를 봐주셨다.

비자fee는 무려 50$!! ㅜ_ㅜ

 

 

기다리는 동안 또 어떤 택시 삐끼가 붙었다.

주소를 보여주며 찾아갈 수 있는지 물었더니 다른 기사들은 20$를 부를텐데, 자기는 15$에 해주겠다며 꼬셨다.

여권을 다시 돌려받을 때 친절했던 창구의 여직원에게 일반적인 택시비를 물으니 10$라 하였다.

5$나 비쌌지만 매우 지쳐있었던터라 그냥 바가지를 쓰기로 하고 탔다.

택시기사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보고 South/North 어느쪽 Korea에서 왔는지 묻다가 너희는 통일할 마음이 없느냐고 하기도 했다.

자기 생각에는 Korea는 통일을 하는게 자국에 좋지만, 미국이 남한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 통일시키지 않으려

할거라는 이야기였다. 아프리카 잠비아의 택시기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비슷한 이미지인 것 같다.

 

 

 

택시는 달리고달려 어떤 캠핑장 안으로 들어갔다.

캠핑장에서 주소를 보여주자 이곳이 맞다고 했다. 안심이 되었다.

아프리카트래블코 팀이 내일 오는지 확인을 한 후 방을 잡았다. 그런데 잠비아가 짐바브웨보다 물가가 싸다고 한 건 누구인가!

싱글룸 하나에 150$나 하는데다 도미토리도 없어서 그 가격에 묵을게 아니면 텐트에서 자야 했다.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하룻밤에 150$나 낼 수는 없었다. ㅜ_ㅜ

별 수 없이 텐트를 선택했다. 하지만 텐트도 결코 저렴하지 않아 무려 34$나 했다.

덥고 어두운 텐트 안에는 침대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는데, 한 침대에 짐을 다 내던지고 다른 침대에 뻗었다.

그렇게 누워있자니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ㅠ_ㅠ

그때 O에게 문자가 왔다. 고마운 녀석..

또다시 감동받았다.

 

 

 

 

↑ 외롭던 나랑 놀던 냥이. 오드아이가 매력적이다.

 

 

 

 

 

 

 

 

 

 

 

 

↑ 캠프의 원숭이들

 

 

 

 

 

텐트에 누워 좀 쉬다가 샤워를 하러 갔다. 땀에 젖었던 몸을 씻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캠핑장 안을 구경했다. 원숭이가 참 많았는데 예전같으면 신기해서 가까이 가보고 싶었겠으나

인도에서 원숭이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좀 꺼려졌다. 멀릿 사진마 찍었다.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다 리셉션 옆에 잠베지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레스토랑에서는 그 강이 한 눈에 보였다.

멋진 풍경을 보며 저녁식사를 할지 잠시 갈등하였다.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임을 상기하였다. 적어도 이런 레스토랑에서는 돈을 쓸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다시 텐트로 돌아가 지갑을 챙겨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 아름다운 잠베지강

 

 

 

 

 

 

그런데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된듯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다. 마치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내가 동양인이라서인지 혼자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불쾌함을 누르고 직접 종업원을 찾아가 메뉴를 요구했다. 그때서야 너도 손님이었냐는듯 반응하였다.

치킨 화지타와 모시(mosi)라는 잠비아 맥주를 시켜 홀로 먹으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자축하였다.

잠베지강은 아름다웠고 저녁이 되자 공기도 시원해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비록 화지타가 좀 비리고 맥주는 물탄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모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물가였기 때문에 모기가 기승이었다. 몇 방 물리고 말면 되는게 아니라 더군다나 말라리아 모기일 수도 있어다.

비록 라리암을 먹고는 있었으나 그래도 뭔가 찝찝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화지타도 양이 너무 많아 남겼다. 아까웠다. ㅜ_ㅜ

 

 

 

 

 

↑ 치킨화지타와 잠비아 지역맥주 mosi

 

 

 

 

↑ 홀로 잠비아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이브 밤

 

 

 

 

 

 

그런데 이번에는 또 계산이 문제였다. 계산해달라고 말했더니 모두들 알 수 없는 말만 하며 다른 사람들 서빙만 할뿐이었다.

분명 내가 계산하기 위해 서있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에는 약간 화를 냈더니 계산을 해주었다. 13$가 나왔는데 20$를 냈더니 나머지를 잠비아돈으로 주려했다.

다시 13$를 정확하게 냈다.

그 식당의 불친절함이 넌덜머리나게 짜증났다.

 

 

 

텐트로 가기 전 리셉션에 멀티 아답터를 빌리러갔는데 그들은 그냥 자기네가 충전해주겠다 하였다.

핸드폰을 가져다주고 침대에 누워있다 설핏 잠이 들었다.

원래 충분히 충전시키기 위해 9시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으나 이러다 잠이 들 것 같아 그냥 받아 왔다.

90%까지 되어있었다.

 

 

 

↑ 텐트 안

 

 

 

 

텐트 안쪽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침낭을 펴 누웠는데, 아까와는 달리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느라 늦게까지 떠들썩한 사람들, 텐트르 잘못 찾아 내 텐트를 열려던 웬 남자,

그리고 모기 한 마리가 계속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침낭은 지나치게 더웠다.

나는 아프리카의 밤은 춥다며 겨울침낭을 준비하라던 누군가를 원망하며 자다깨다를 반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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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기 1

 

2012.12.22.-12.23.

 

 

 

 

 

■ 출발 전 준비

 

드디어 출발한다. 알람이 7시부터 울렸지만 8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떠난다는 것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없애기 위해 아침을 차렸다. 소고기 장조림도 데우고 콩나물국도 끓였다.

멍하니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식사를 마쳤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주말 아침.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잘 자기 위해 커피를 생략한 것만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랄까.

짐을 챙기며 빠뜨린 것들의 목록을 살핀다. 사야할 것들이 있다.

집을 나선다. 시계를 고치고 은행에 들르고 슈퍼에 갔다.

배낭을 서서히 챙겨나가다보니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남은 콩나물국과 찬밥으로 점심을 먹고나니 식료품 비우기도 이제 끝이다.

 

출발이다!

 

 

↑나의 거대한 짐들(메인 배낭, 보조가방, 카메라 가방, 침낭백)

 

 

보조가방, 카메라가방, 큰 배낭에 거대한 침낭까지 든 모습이 다소 웃겨서 엘리베이터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경비아저씨의 느닷없는 등장으로 실패하였다.

택시를 잡아타고 강변역까지 왔다. 긴장된다.

시간에 맞춰 KAL리무진이 도착했다. 그렇지만 토요일 오후라 시내를 빠져나가는 시간이 다소 걸렸다.

오후 1시40분 버스를 탔는데 3시가 넘어서야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쇼핑!

미처 구매하지 못했던 물건들을 돌아다니며 구매하였다. 파우더, 비상약 등등.

그러다보니 보딩을 받아야하는 H구역까지 자연스레 와있었다. 5분 후면 창구가 열린다는 안내가 있길래 은행으로 가려던 발을 창구로 돌렸다. 이미 창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3시40분에 창구가 열렸다. 그러나 줄이 길고 수속이 느려서 내가 카운터에 도착한 것은 4시15분이었다.과장스러운 친절함이 인상적인 아저씨께서 나의 담당이셨다. 아저씨는 내 티켓을 보고는 놀랍다는 반응을 연거푸 다른 버젼으로 보여주셨다.

짐바브웨가 나라 이름이냐고 하기도 했고, 빅토리아펄스라는 나의 목적지를 생전 처음 들어본다고도 하였다.

여자 혼자 그 험한 곳에는 왜 가냐는 식의 물음을 하기도 하였다.

또 2번이나 환승을 한다니까 그럼 짐을 바로 보내줄 수 없다고 하기도 했으나 옆의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더니 되게 해주셨다.

꽤나 부산스러운 분이셨던 데다가 보딩패스기계의 용지가 때마침 떨어지기도 해서 내 보딩패스를 받는 데에만 무려 15분이 걸렸다.

내 뒤에 길게 늘어섰던 줄은 어느새 다른 창구에서 해결되어 거의 다 사라지고 없었다.

기로 긴 체크인이 끝나자 어느덧 시간에 여유가 없었다.

나는 몹시 당황하여 서둘러 지하 1층 외환은행으로 갔다. 은행에서 사이버환전해뒀던 돈을 찾고 보험도 들고 신속 처리한 후 근처 화장실로 달려가 긴급히 복대에 돈을 옮겨넣었다.

 

 

이번에는 세탁소를 찾을 시간. 세탁소 위치를 정확히 알아오지 않은고로 이리저리 당황하여 헤매다가 지하 1층 반대편 끝에서 찾아냈다.

그러나 하나투어 이용자도, 아시아나 이용자도 아니라 했더니 무려 38,000원을 요구했다. 옷 한 벌 살 값이었다. ㅜ_ㅜ

내가 알아온 곳은 원래 8,000원이었는데....

그러나 이미 다른 세탁소를 찾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38,000원을 선불로 지불하고 서둘러 3층으로 갔다.

 

 

 

 

 

■ 출발 직전의 긴장과 우울

 

짐 검사와 출국 심사를 마치고 뒷쪽 터미널로 가는 셔틀전철을 타고나니 비로소 맥이 풀릭 출발하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자 급속도로 우울함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이라 두려움과 긴장도 컸다. 내가 무엇을 위해 왜 떠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분이 너무나도 다운되어 참을 수 없었다. 당장 여행을 중지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O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6시 비행기라고 한참 전에 알려줬던 것 같은데 잊지않고 연락한 것이다.

O는 무척 미안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해왔는데, 지금이라도 여행을 취소하면 안되냐는 O의 말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누구인가 절실히 느꼈다.

O는 거듭 나를 말리고, 걱정하고, 미안해하며 내 자세한 스케쥴까지 챙겼다.

그때 받은 감동은 도무지 지금 표현이 안된다.

O와 통화하며 나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게이트 바로 앞. 탑승시간이었다.

부모님과도 통화해야 했기에 O와의 전화를 끊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엄마와 동생과 통화를 하고 이제 막 탑승하려는데 갑자기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바로 O였다.

이번에는 눈물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O의 문자를 읽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심경으로 나는 비행기에 올랐고, 고마웠던 O와 사랑하는 나의 가족, 여러 감정들로 혼재된 나의 20대와

대한민국을 뒤로 한 채 이륙하였다.

늘상 비행기를 타면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으나 이번에는 다름 감정들이 압도하여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다.

 

비행기는 한 줄에 6열짜리 작은 비행기였다. 체크인할 때 부산스럽던 아저씨가 장거리 여행이니 제일 좋은 자리를 주겠다고 한 것은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비즈니스석과 연결된 가장 앞자리 통로쪽 자리로 다리도 한참 뻗을 수 있는데다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맨 처음

받을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코트를 맡긴 후 반팔에 가디건 차림으로 버티고 있던터라 담요부터 챙겨 몸을 말고 눈을 감았다.

중간에 잠깐 기내식을 먹었다. 북경까지는 그리 긴 비행이 아니었다.

 

 

 

 

■ 중국에서의 당황스러운 환승

 

 

2시간여 후 나는 베이징 공항에 내렸다. 북경은 우리나라보다 더 추웠다.

비행기는 연결통로도 없이 계단을 통해 내려 셔틀버스로 이동하는 식이었는데 비행기 문을 나선 순간 엄청난 추위가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계단 아래 셔틀이 두 대 있었는데 하나는 엄청 아늑해보이는 봉고차였고, 다른 하나는 늘 공항에서 보던 문 다 열린 버스였다.

내 앞에 내린 비즈니스석 손님들은 전부 봉고에 앉아있었다. 나는 이코노미석에서 내린 첫승객이었다.

순간적으로 따뜻해보이는 봉고차에 혹했다가 안된다며 다시 버스쪽으로 발을 돌렸는데, 내 뒤에 바로 따라내렸던 이코노미석 아주머니가

눈치빠르게 봉고차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도 잽싸게 그쪽으로 갔다. 내가 타자마자 봉고는 출발했다.

예상대로 히터가 빵빵하게 틀어져있어 봉고는 매우 따뜻했고 자리도 무척 넓었다. 비즈니스석 승객들을 위한 셔틀이 틀림없었다.

셔틀은 넓은 공항을 돌고 돌아 어떤 건물 앞에 섰다. 나는 Transfer 표지판만 보고 따라갔다.

 

 

Tranfer 창구 앞에서 인사 후 내 티켓을 내밀었는데 South Africa라는 목적지를 듣자 다른 쪽으로 가라며 오른쪽을 가리켰다.

과연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또 Transfer 창구가 있었다.

그 곳에 줄서서 기다린 후 내 차례에 티켓을 내밀자 이번에도 또 다른 곳으로 가라 했다.

내 영어 실력이 안좋아진건지 돼체 어디로 가라는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일단 제스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니 P/P ONLY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티켓을 내밀자 그제서야 무언가 처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입국카드와 출국카드를 내밀더니 둘 다 쓰라 했다. 나는 베이징에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환승만 하면 된다 했지만,

계속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할고 할 뿐이었다. 별 수 없이 카드를 기재해 내밀었더니 입국 처리를 해준 뒤 나를 뒤로 나가라 했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와보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나는 중국에 입국하여 있었던 것이다. 더이상 Transfer 간판도 없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나는 우왕좌왕하였다.

한참을 헤매다 어떤 여자 경관에게 물으니 나더러 C building으로 가라 했다. 그것도 C VOD로 들려서 알아듣는데 한참 걸렸다.

일단 시키는대로 셔틀 트레인을 타고 한 저거장 가서 내렸다.

가다보니 비행기 짐 찾는 곳이었다.

분명 4층으로 가랬는데 가는 경로도 없었다. 나는 또다시 패닉에 빠져 C 빌딩 안을 우왕좌왕하다가 Info에 가서 물었다.

그러나 나에게 아예 건물 밖으로 나가서 4층으로 올라가라 했다. 시키는대로 공항 밖으로 나가 위로 올라가니 그곳이 보딩패스받는 곳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인천공항에서처럼 보딩부터 다시 받아야 함을....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나는 공항 내에서 그저 환승하지 못한 채, 중국에 입국했다 출국하는 경로를 밟아야 했는지....

 

 

이번에는 보딩줄이 더 길었다. 내 앞에는 혼자 온 남아공 남자가 서 있었는데 심심했는지 자꾸 말을 걸려 했다.

그러나 나는 피곤함과 패닉에, 또 감기몸살 기운에 컨디션이 최악이라 상대해줄 수가 없었다.

대꾸를 잘 해주지 않았더니 제풀에 지쳤다.

한참 기다려 보딩을 받고 다시 출국심사를 하고 짐검사를 했다.

이 모든 절차가 이해가 안되었다.

짐검사까지 마친 나는 다시 셔틀트레인을 타고 아까 내렸던 E-Station으로 다시 와야 했다.

타야 할 게이트까지 오니 정말 지쳐있었다.

탑승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았다.

마침 핸드폰 충전잭이 있길래 아이폰을 충전시킬 겸 그 자리에 앉았다. 충전까지는 좋았으니 그 자리는 무척 추웠다.

북경의 겨울바람이 어디에선가 오소소 스며들었다.

감기기운이 있던 몸은 더 안좋아졌다.

 

 

↑북경 공항 게이트 앞에서 찍은 남아공행 비행기

 

↑북경 공항 내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다시 또 탑승.

이번에도 좋은 자리였다. 앞으로 다리를 뻗을 수 있었고 복도쪽이었다. 내 왼쪽에는 어떤 중국인아저씨가 앉았다.

몹시 피곤했으므로 귀마개를 하고 안대를 한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을 치는 바람에 깼는데 그 이후로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12시간도 넘는 긴 비행시간동안 일종의 가수면 상태로 있어야 했다. 허리가 뻐근하였다.

 

 

 

 

■ 요하네스버그에서의 쉬운 환승

 

 

↑요하네스버그 게이트 앞

 

 

마침내 요하네스버그 도착!!

미칠듯 피곤했으나 나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환승 절차를 밟아 게이트 20E에 다다랐다.

자리가 많이 없어 다른 게이트 앞에 앉아 기다렸다.

 

중국에서 입국했다 출국하는 번거로운 절차 덕분에 환승에 2시간도 넘게 걸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남아공에서의 환승은 쉬웠다. 빅폴로 가는 게이트가 열렸다는 방송을 듣고 게이트 20E로 가보니 아시아 사람들이 다수 보였다.

혹시나... 하고 반가웠으나 전부 일본 사람들이었다.

말을 걸어볼까도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다시 셔틀을 타고 비행기에 도착.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세 명이 나란히 앉는 자리의 가운데였다. 그때 마침 아까 본 일본인 일행이 왔다. 그들은 내 양 옆자리였다.

왜 한 일행끼리 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자리를 바꿔주고 싶었으나 적당한 타이밍에 얘기를 꺼내지 못해 그러지 못했다. 비행기는 금세 짐바브웨의 작은 공항 빅폴(빅토리아폴스)에 도착하였다. 빅폴에는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 목적지(빅폴) 도착! 긴 비행의 끝

 

 

↑빅토리아 펄스 공항

 

공항에 내려 긴 줄에 섰다. 비자를 받는 줄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길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내 차례가 왔다. 그동안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었다. 드레퓌스 이야기였다.

비자 비용을 30$였다. 창구를 나오니 짐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2번이나 환승해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내 짐이 무사히 도착해있었다. 내 짐을 찾아 X선을 통과한 후 밖으로 나오니 몇몇 사람들이 따라붙었다.

숙소 삐끼인지 확인하려는데 택시 기사 하나가 붙었다. 시내까지 30$를 불렀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공항 Info에 확인했더니 거기에서도 노멀 프라이스라 했다. 아마도 외국인 대상 노멀 프라이스가 아닐까?

Info에서 숙소를 추천받았다. Restcamp라는 곳이었다.

택시기사는 비싼 값에 신났는지 무척 친절했다. 어차피 바가지를 각오했었기에 그다지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보다는 빨리 쉬고 싶었다.

 

 

 

↑캠프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양 옆의 울창한 나무들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드디어 Restcamp 도착!.

리셉션에 확인하니 도미토리에만 방이 있다 하였다. 11$였다.

택시 기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체크인을 했다. 리셉션에서 키를 받아 나왔다.

이곳은 하나의 큰 캠핑장이었다. 안에는 여러 종류의 롯지와 텐트가 곳곳에 있었다. 문을 지키던 경비원에게 물어 나의 건물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침대만 덩그러니 6개가 놓여있었다. 가장 안쪽 침대를 골랐다.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으나 그보다 씻고싶은 열망이 더 컸다. 여성 표시가 있는 건물에 들어가보니 화장실과 샤워실이 함께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어보니 잘 나왔다. 만족하고 샤워도구를 들고와 샤워를 하다 식겁하였다. 샤워 커튼이 반투명하였던 것이다. 덕분에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혹시나 싶어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누우니 살 것 같았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노크소리에 잠을 깼다. 베개 커버를 갈러 온 것이었다.

커버를 다 갈고나가자 그제서야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빗물이 슬라이트 지붕을 치는 규칙적인 소리를 자장가삼아...

 

 

↑캠프의 샤워실

 

↑도미토리 내부 모습. 야전병원이나 학교 기숙사를 연상케한다.

 

 

 

잠이 깬 것은 그로부터 2시간 뒤. 5시였다.

그대로 쭉 자고 싶었으나 저녁도 먹어야 하고 물도 필요하여 나가야 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우산 하나만 들고 캠핑장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본 피자집이 있길래 안으로 들어갔다.

regular 피자랑 콜라를 주문하니 5$였다. 비쌌다. 50$를 내밀었더니 위폐인지 한참 확인을 했다.

거스름돈이 없어 좀 기다리라 했다. 거스름돈은 나중에 피자를 받을 때 받았다.

 

↑Pizza Inn이라는 피자 체인점. 나중에 케냐에서도 볼 수 있었다.

 

↑reguar 피자.

 

 

피자 맛은 그저 그랬다. 다 못먹고 남겼다.

남은 피자와 우산을 들고 빅폴쪽으로 걸어보다가 피곤하고 무서워 다시 숙소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는 길에 물을 샀다. 0.65$였다. 숙소로 돌아와 이를 닦고 말라리아 약을 먹었다.

말라리아 약과 같이 먹어도 되는지 몰라 감기약은 먹지 못했다. 말라리아 약이 목에 걸려 안좋은 맛을 남겼다.

물을 많이 마셔도 그 쓴 맛이 가시지 않아 구역질이 났다.

 

일기를 쓰고 자려고 열심히 쓰는데 나 혼자 있던 도미토리에 멤버가 점점 늘어났다.

이제 일기도 끝! 얼른 자야겠다. 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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