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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8.15 시대가 부여한 잔혹한 운명에도 생을 이어간 한 여인의 이야기<그을린 사랑>
  3. 2011.06.26 Love me, if you dare 1
  4. 2009.05.04 고하토
  5. 2009.05.04 봄날은 간다

광해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8.4
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김인권, 장광
정보
드라마, 시대극 | 한국 | 131 분 | 2012-09-13

 

그 유명한 영화 '광해'를 나는 이제서야 보았다.

어릴 때는 나는 광해군을 폭군이라 배웠다. 연산군과 더불어 조선의 2대 폭군.

그러나 자라면서 새롭게 해석한 역사서를 읽게 되었고, 최근에는 연산군과는 달리 광해군에 대해 재평가하는 흐름이 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 역시 당시의 국제 정세와 조선 내부의 여러 상황을 아울러 보았을 때, 광해군은 폭군이라기보다는 적극적이며 개혁적인 왕이었으며, 다만 기어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왕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아 그간 오랜 세월 오해받아온 왕이라 판단하게 되었다.

 

영화 '광해'는 바로 그러한 최근의 역사적 재해석을 토대로 노골적으로 광해군을 편드는 영화이다.

목숨을 위협받아온 광해군이 자객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흉내내는 광대를 데려와 허수아비 왕 노릇을 하게 하다, 잠시 몸져 누운 사이 그가 보름간 왕 노릇을 대신하게 된다는 내용은 그럴듯하면서도 역사적 사실들과 맥락을 잘 맞추어 재미를 더한다. 광해군의 선정으로 평가되는 대동법 시행이나 중립외교 시행 등은 광해군의 업적이 아니라 그 광대가 했던 것이며, 때로 폐위의 이유가 되는 왕 답지 않은 처신과 기행 등은 그 역시 왕이 아니라 광대였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보면서도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는 역시 또 하나의 영웅만들기를 통해 재미를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새롭게 재해석되는 조선의 왕들은 모두 비루하기 짝이 없다. 아니, 비단 왕 뿐 아니라 그 어떤 위인전의 위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 시절 완벽에 가깝게 보이던 위인들은 사실은 숨겨진 단점이 있거나, 그들 역시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 드러난 사실이다. 특히 요즈음 들어 기존의 프레임을 깨부수는 작업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작업들로 기존의 위인들은 그 지위를 박탈당했으며, 이전에는 평가절하되던 이들이 도리어 추앙되는 등의 일들을 통해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은 기존의 절대 권력자인 왕이나 위인들의 약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도리어 안도하고 위안을 얻는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일종의 조소가 깔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를 뒤집어 엎을만한 영웅(히어로)를 강력이 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체제를 뒤흔들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대한 염원.

 

광해군은 재평가를 통해 기존의 평가처럼 그저 악하기만 했던 폭군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기존 평가가 다 거짓일 수는 없다. 그는 일부 폭력적인 성향을 띄었을 수도 있고, 고집이 세어 주변 사람들을 말을 잘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그의 모든 행보를 '광대가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치환해 버린다. 지나친 비약일 수 있으나 광대의 기행과 맞물려 광해군은 기존의 폭군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도리어 '조선의 훌륭한 왕'이라는 느낌마저 가지게 한다. 맨 마지막 감독의 문장 몇 마디는 특히 그러한 느낌을 더한다. 광해군은 유일하게 명에게 맞선 조선의 왕이라는 문장.

물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광해군의 이미지를 송두리째 바꾸고자 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단순히 스토리가 재미있고, 연기자가 연기를 잘한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이러한 심리가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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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부여한 잔혹한 운명에도 생을 이어간 한 여인의 이야기<그을린 사랑>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고...

사람들은 사랑할 때도 '흥분'을 하고, 미워할 때도 '흥분'을 하고,

즐거울 때도 '흥분'을 하고, 화가 날 때조차 '흥분'을 한다.

비단 '흥분'이라는 상태 뿐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각자 너무나

다른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는 의외로 매우 닮은 현상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감정들은 서로 닮았고 닿아 있다.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영화 '그을린 사랑'은 중동의 극단적인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하나의 원인 변수에 의해서 벌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비극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어머니에게 성애를 느끼는 오이디푸스까지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한 여인이 한 남성을 만나 사랑을 했다'

라는 단순 명제는 차곡차곡 비극과 절망의 스토리로 나아간다.

여인이 사랑한 그 남성은 여인의 가족에게 살해당하고, 그 여인은

그의 아들을 낳고, 억지로 헤어졌다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친아들에게 잔인하게 강간당해 또다시 쌍둥이를 낳고,

그 쌍둥이를 키우는 일련의 스토리는 이미 정상적인 삶의

스펙트럼을 한참이나 벗어났기에 소름끼칠만큼 비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떤 삶의 역경 속에서도 여인은 지지 않고 일어서려 했으나,

시대와 운명은 그녀에게 잔혹했다.

 

후에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우리는 그녀의 이 극단적인 감정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극도의 미움과 극도의 애정.

그토록이나 농도 진한 두 개의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내면에 품고 그녀는 어떻게 살아갔던 것일까.

 

삶과 운명은 때로 너무나 잔인하다.

그러나 그 잔인함조차 의도치 아니하였고, 또한 인식치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것 같다.

 

이러한 비극은 그러나 이 이야기 속 뿐 아니라 현재도 어디에선가

더욱 극적으로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비극을 보며 감동을 받고 아름답다 생각하는 이면에는

바로 그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삶을 똑바로 응시하려 줄곧 애쓰던 그 여인의 눈이 자꾸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을 묻고 싶다.

 

당신이 그러한 비극 속에서도 생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 여인은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흘러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냥 그렇게.

굳이 원인을 찾지 않아도 원인은 이미 삶 속에 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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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me, if you dare







약 사흘 전.

 

우연히 어떤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흘 내내 그 영화의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질 않았다.

나는 계속 종일토록 그 영화의 내용을 마음의 언저리에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우연히도 역시 비 내리는 사흘간의 영향이었을지 모른다.

 

마침내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열망이 최대에 다다랐을 때에

나는 그 영화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엇갈리는 타이밍. 마음. 용기.

충분히 이루어져 행복하고 아름다웠을지 모를 두 사람의 운명이

끊임없이 빗겨갈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은 그러나 그저 섬칫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비련의 아름다움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동안도 정말 이 영화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LOVE ME, If you d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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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고하토'를 보았다.
사무라이 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내용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고,
신선조에 관련한 만화나 영화를 다수 봐왔기에 익숙한 이름도 꽤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거 내가 봐 온 신선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내용을 선사하였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본 후의 느낌은 다소 멍했다.
오시마 나기사라는 감독은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감독이라고 한다.
나는 들어본 바 없고, 영화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체로의 평을 보니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내용을
잘 표현해낸다고 한다. 그것은 나의 '멍함'과 조금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시종일관 야릇한 분위기를 내는 카노(마츠다 류헤이)의 표정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더욱 화면을
그런 분위기로 이끌었다. 감독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의도한 것 같다.

 이 영화는 대체로 히지카타(기타노 다케시)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신선조 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소문이 도는 등 흉흉한 분위기가 퍼져나가는데
그 모든 사실은 철저히 관찰자인 히지카타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딱히 이 영화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히지카타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단서를 제공한 채, 관객에게 추리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카노가 타시로와 결투하던 도중 무언가를 속삭이는 장면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그 말은 잘 들리지 않고, 그 장면을 훔쳐보던 소지나 히지카타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영화를 해결할 키워드가 될 수 있는 그 말.
그러나 감독은 끝내 그 키워드를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내 식대로 영화를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다.

카노는 '저에게 미래가 있나요?'라고 말할만큼 염세적이고, 미래에 대해 생각지 않는다.
더구나 '죽이기 위해서 신선조에 들어왔다'라고 말할만큼 살인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며 오히려 적극성을 띈다.
그것은 맨 처음 카노가 신선조에서 처음 처형을 할 때에도 강조된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히지카타는
누군가를 죽여본 솜씨라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카노와 타시로의 관계이다.
우선 타시로가 카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뚜렷하다.
시종일관 타시로는 카노에게 집적대고 관심을 표현한다. 감춰진 것은 카노의 마음.
내 생각에 카노는 타시로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둘은 사귀지도 않았다고 보여진다.
다만 카노는 타시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히지카타는 카노와 타시로의 결투 장면을 보며 둘이 연인관계라고 확신하게 되며, 공공연한 소문 역시 떠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카노가 의도한 것이라 생각된다.
카노는 그러한 소문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행할 살인의 정당성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 소문으로 인해 자신과 관계를 맺은 유자와가 살해되었을 때, 그 범인은 타시로로 지목된다.
질투에 의한 살인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또한 타시로인 척 하고 누군가를 습격하여 결국 타시로가 처형되게 하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 역시
둘이 사귀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애초부터 카노는 그럴 셈으로 타시로와 소문을 이용한 것이다.

 카노. 그는 이 영화에서 조금은 묘한 역할이다. 마츠다 류헤이를 처음 본 것은 '나나'에서였는데,
사실 그 역할을 맡기에 조금  어색함이 있었다. '고하토'에서의 카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신선조의 모든 남자들을 홀리고 다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마츠다 류헤이는 그 역할에 매우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눈에 띌만큼 꽃처럼 아름답지는 않으나,
일본 특유의 가는 선과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또한 그의 눈은 매우 유혹적이고 일종의 '색'이 엿보인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면서도 스스로 신선조에 자청해 들어온다.
혹자는 그것을 강간을 당하려다 강간범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영화의 본 내용에서 너무나 벗어난 추측이기에 일단은 배제해 둔다.
그는 앞서 말한대로 팜므파탈적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매우 위험해 보인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이용하려 하며, 살인을 즐긴다. 마치 모든 이의 여왕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은 매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쌩뚱맞게 이어지는 소지의 긴 이야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치 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듯 모든 이 위에 군림하던 카노는 결국 소지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것도 의견이 매우 분분)

그리고 그 직전 소지는 히키가타에게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동성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이야기는 아름답다고..
아마도 소지는 카노와 타시로의 사랑 이야기를 빗대어 말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결국 카노가 타시로를 아무런 망설임없이 베어버리자 소지는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소지가 돌아가서 카노를 베었다고 생각한다.

 카노에게 역시 헛된 미망을 품고 있던 히키가타는 카노가 죽는 소리를 들으며 눈 앞에 벚나무를 힘껏 베어버린다.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부장과의 관계마저도 흔들만큼 대단했던 카노.
'카노, 너는 너무 아름다웠다.' 고 중얼거리며 벚나무를 베는 히키가타의 모습이 처음에는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카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힘있게 끊어버리는 결심을 드러낸 것이라 짐작된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카노가 타시로에게 했던 비밀의 말을 소지만은 들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히키가타가 듣지 못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소지는 그 말을 들었고, 진상을 알았기에
몰래 되돌아가 카노를 죽였을 수 있다. 다만 히키가타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 말을 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각종 영화에 대한 글들을 읽고 알게 된 것인데, 소지는 사실 맨 처음 카노와 대결했던 사람이었다.
카노가 소지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매우 나를 헷갈리게 했다.
영화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으며, 히키가타가 어째서 그런 결론을 내린 건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히키가타의 추측이 맞다면, 카노가 순수 악처럼 군림하며 살인을 일삼은 것과 끝끝내 머리를 자르지 않은 것은
모두 소지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해, 소지는 카노의 사랑이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순수한 것이 아니라 베어버렸지만,
사실 소지에 대한 사랑만큼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카노는 신선조에 위험했다.
유일하게 신선조 내부에서 카노에게 홀리지 않았던 소지는
그 위험을 끊어냈다. 소지가 끊어낸 그것이 바로 고하토,
다시 말해 금기였을 것이다.

 

보고나서 매우 헷갈리던 영화.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고 확신할 수가 없는 묘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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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감독 허진호 (2001 / 한국)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박인환, 신신애
상세보기


진작부터 보고 싶다고 벼르고 싶던 영화를 보았다. 왠지 이런 식의 영화는 함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때나 그냥 시간이 남으니까 본다는 식으로 보면 안된다는 나름의 의식이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 오늘이야말로 이런 영화를 보기에 딱인 날이었다. 적당히 차분하고, 적당히 감상적이고.

사실 줄거리를 다 알고 있었다. 소리를 모으는 남자와 라디오 DJ인 여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사랑이 다 하여 헤어지는 이야기. 차분하고 잔잔한 영상 속에서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영화에 공감하였다. 영화를 다 보고난 지금도 귓가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던 유지태의 음성이 울리는 것만 같다. 사랑할 때의 행복한 모습보다 헤어진 후의 방황하는 상우(유지태)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는다. 이미 끝났다고, 사랑은 그 힘을 다하였다고 아무리 알고 있어도 좀처럼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사랑은 서로 마주보며 하기도 힘든 것이고, 동시에 시작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동시에 끝낸다는 것은 몇 배나 더 힘들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헤어짐은 적어도 어느 한 사람의 고통을 수반한다. 각자의 그릇에 담긴 사랑이 달랐기에 한 쪽의 사랑이 고갈되었어도 다른 쪽에는 아직 사랑이 많이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억지로 남은 사랑을 버리는 것은 많은 시간과 고통을 필요로 한다.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고, 잊지 못하고 자꾸만 그리워하는 자기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면서도 그래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상우의 모습이 가슴이 깊게 와닿고 공감되었다.

결국 아름답던 봄날은 갔다.

그리고 그들에겐 이제 기억만 남았다.

 

 

 

 

-2004.08.12 21:16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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