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생일선물로 받았던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요즘 읽고 있다.
감옥에서의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그 답답하고 고된 생활 속에서도 
세상과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연히 보인 나비 한 마리, 아이들의 함성 소리, 새벽녘의 빛에도 하나하나 민감히 반응하여 
결국에는 깊이있는 사색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 놀라웠다.

책은 대체로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모은 형식인데, 부모님이나 형수님, 아우, 형, 계수님께 
보낸 편지들의 어투나 내용이 매우 고전적이어서 낯설고 이상스러웠다. 
그러나 언뜻 처음에 보았던 감옥살이의 날짜(1968-1988년)가 그냥 생각하기로는 근대사에 가까우므로 
비교적 최근으로 느껴지지만, 현재 읽고 있는 2/3 지점에서조차(1982년) 나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임을 
생각해보면 그 실제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고작 백 년도 채 못 사는 내가 40여년 전을 최근으로 
여긴다는 것이 얼마나 거만한 태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귀로 몇 백 년 전, 몇 천 년 전, 몇 억 년 전 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거듭 듣다보니 
그 실제의 크기는 망각하고, 그저 숫자 놀음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신영복님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중에 가장 인상적이던 것은 '피서'의 이야기였다. 
피서(避暑)가 아니라 피서(避書)다.
감옥이라는 좁은 곳에 갇혀있다 보면 응당 많은 책을 접하는 것이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계속 발전해가는 좋은 계기가 아닐까 싶지만, 신영복님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대개의 책은 실천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너무나 흰 손에 의하여 집필된 경험의 
간접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객관적 관조와 지적 여과를 거쳐 현장인들의 
체험에 붙어다니기 쉬운 경험의 일면성, 특수성, 우연성 등의 주관적 측면을 지양하여
고도의 보편성을 갖는 체계적 지식으로 정리되기는커녕, 집필자 개인의 관심이나 이해관계 속으로 
도피해버리거나, 전문분야라는 이름 아래 지엽말단을 번다하게 과장하여 근본을
흐려놓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책에서 얻은 지식이 흔히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이기 쉽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고, 실천과 함께 발전하지도 않는 허약한 가설, 
낡은 교조에 불과할 뿐 미래의 실천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분서를 욕할 수만도 없습니다.

                                       (중략)

설령 책에서 무슨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를 옳게 판단하거나 일머리를 알아 
순서 있게 처리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경우가 태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 특유의 
지적 사유욕을 만족시켜 크고 복잡한 머리를 만들어, 사물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의 머리 속을 뒤져
비슷한 지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만 그것으로 외계의 사물에 대치해버리는 습관을 길러놓거나, 
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 대신 권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리된 생각과 실천이다.

돌아보면 무한정 책을 읽기는 하나, 마치 과식한듯 내용을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적이 많고, 
어떤 때는 이 책, 저 책에서 읽은 내용을 마치 내 생각인양 착각했던 적도 있던 것 같다.
어느새 책은 많이 읽는 것이 좋다라고 단정해 버렸다.

 '불에 데이면 아프다'고 글을 통해 아는 것과 실제로 불에 데인 아픔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 많이 다를 것이다.
그저 말과 글을 통해 아는 것을 전부 아는 양 여겨서는 안되겠다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다.


이전에 데이빗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이란 책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난다. 
그 책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저자의 글과 실제 행동이 일치했으며, 
그가 매우 실천적인 삶을 지향했던 데에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비교적 꽤 있으나 정말로 실천적인 사람은 
드문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관조와 게으름으로 삶을 소모해가는 최근의 행보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책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날카롭게 가시 선 마음이 보다 따뜻하고 안정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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