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기 ⑧



2007/2/19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긴밤을 지새웠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새벽에 내 방 창으로 내다 본 장면

 

밤새 떠들고 놀던 외국인 일행은 지치지도 않는지 새벽부터 또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떠들었다.
있으나마나한 벽 너머로 아주 작은 소리까지도 세심하게 다 들려왔다.
나는 화장실 앞에 있는 굉장히 지저분하고 조그마한 세면대에서 겨우겨우 세수를 했다. 아래층에 내려가니 롯지의
주인인 가족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와 Vivek은 토스트와 네팔차를 주문하였다. 따끈한 차가 들어가니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집 큰아들은 불평도 없이 손님들 방과 부엌을 오가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했다.
이제 겨우 10살 정도 됐으려나..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좀 서둘러 출발하였다. 오늘 안에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 울레리(Ulleri)를 벗어났을 때 우리는 또 익숙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Niraj와 Yenina였다.
그들은 우리보다 한시간이나 먼저 출발해서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어제의 근육통으로 끙끙거리는데다가
앞뒤로 맨 짐의 무게로 거의 넘어질듯 하자 Niraj는 내가 앞에 매단 가방을 거의 빼앗듯이 하여 Vivek에게 넘겼다.
그는 막 농담식으로 옆에 건장한 일꾼이 있는데 뭐하러 내가 짐을 다 지냐고, 내 짐을 다 지우고 나까지 올라타도
Vivek은 거뜬할 거라면서 웃었다.
내가 괜찮다고 했지만, Vivek도 내가 너무 불쌍했는지 그 가방을 자기가 들겠다고 했다.
Niraj는 나에게 주변의 남자를 잘 활용하라고 충고하였다. 그러자 거의 자기 키만한 짐을 짊어지고 가던 Yenina가
Niraj를 째려보았다. 그 눈빛을 눈치챈 Niraj는 자기는 Vivek과 달리 연약한 남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온건지 군데군데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본 Vivek은 매우 흥분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나 사진으로 눈을 본 적은 있지만
직접 경험하는 건 처음이라며 만져 보기도 하고, 사진을 막 찍기도 했다.
Vivek의 고향은 네팔의 아래쪽인 우림지역이라서 눈을 볼 기회가 없고, 수도인 카트만두도 춥긴 하지만 결코 0도 이하로
떨어지진 않기 때문에 눈을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 눈을 보고 흥분한 Vivek, 곧바로 뛰어들다!


 

↑ 우스갯소리의 대가 Niraj

 

↑ 열심히 눈을 치우던 꼬마에게 한 수 가르치려 들던 Niraj
그러나 연약한 남자였기에 결과는 참패.. ㅋㅋ

 

 몇 시간 정도나 올라갔을까. 어제 너무 무리했던 탓일까.. 어제만큼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나는 짐 하나를 Vivek에게 맡기고도 중간중간 계속 쉬어야만 했다. 다행히 Yenina와 Niraj도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속도를 맞추며 같이 올라갔다. 중간에 만난 간이매점은 정말 너무나 반가웠다.
그 곳에서 네팔차를 주문해 마시며 추운 속을 달래고,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사탕을 나누어 먹었다.

  

↑ 휴식중..
지금에서야 깨달았는데 사진 찍을 때마다 Niraj는 카메라를
혼자 의식하고 있다...

  

모두가 지쳐서 쉬고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좀 기운이 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특히 매점 아주머니의 딸이 혼자 바닥에 눕혀져 있었는데 보는 순간 너무나 귀여워서 마음을 빼앗겼다.
손을 잡고 흔들어보기도 하고, 한국식으로 얼러보기도 했다. 아이의 귀에는 철사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갓난아기인데 이미 귀를 뚫은 것이었다. 내가 좀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니 Vivek은 당연한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특히 Vivek이 속한 체트리와 브라만같이 윗쪽 카스트의 여자들은 코까지 뚫어야 한다고 한다. 코걸이가 그 신분을 나타내는 셈이다.
그런데 Vivek의 누나는 아기때 뚫지 않았기 때문에 다 커서 뚫어야 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일 때 뚫는 쪽이 더 낫다는 설명이었다.

내가 아기랑 노는 동안 어떤 네팔 할아버지가 빠른 속도로 도착하셨다. 나와 아기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우리쪽으로 와서
나에게 뭐라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는 외국인이라 네팔어를 알아들을 수 없음을 애써 표현하였지만,
그 할아버지는 내 말은 듣는둥 마는둥 하며 계속 따다다다 네팔어로 이야기했다.


 

↑ 매점 아주머니의 아기

  

트레킹을 하는 내내 나는 정말 질릴만큼 Ass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산길에서 Ass를 만났을 때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길의 양 사이드 중에 벼랑 쪽이 아닌 반대편으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Ass가 피해있는 사람을 엉덩이로 툭 치는데 그 힘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몇 m정도는 밀려갈 정도로 힘이 세다. 따라서 자칫하면 엉덩이에 떠밀려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말보다 훨씬 작고 눈이 순해보여서 왠지 여린 동물처럼 느껴졌는데 정말 힘은 생각보다 장사였다.

 

↑ 어마어마한 무게를 짊어지고 산을 올라야 하는 Ass
 

 Ass는 네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동물이다. 경사지고 미끄러운 히말라야 산을 오를 수 있는 동물이
몇 안되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오르다가는 좁은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절벽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거기다 몸집은 노새만하지만 힘은 그보다 훨씬 세니 너무나 필요한 동물이다.
끊임없이 무거운 짐을 나르며 산을 오르는 Ass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Ass의 사진을 찍었더니
Vivek은 내가 너무 Ass만 좋아한다고 하며 막 웃겼다.

 

 

↑ 사진이 작아서 잘 안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부부 두 명이
이마에 이상한 끈을 대고 거기에 의지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마침 Ass 일행이 또 지나가자 Vivek은 나보고 Ass와 같이 사진 찍으라고 제안하였다.
좋다고 금방 대답했지만 막상 Ass가 가까이 다가오니 너무 무서워서 저절로 몸이 엉거주춤해졌다.

 

↑ Ass가 무서워서 어정쩡히 서 있는 나
네팔 청년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네팔 가족들


 

↑ 미끌미끌, 조심조심

 

 히말라야 산 곳곳에는 트레킹 온 사람들을 위한 롯지가 마련되어 있다. 이 롯지는 정말 방문객들에게 단비같은 존재이다.
잠잘 곳은 물론, 화장실, 먹을 것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옛날로 치면 산 속의 주막이려나?
그러나 모든 롯지가 항상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주인을 잃고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롯지도 있었다.
어제 지나친 돌격행진으로 힘들었었기 때문에 오늘의 트레킹은 여유가 있고, 자주 쉬었다.
이런 방치된 롯지도 우리의 쉼터로 이용되곤 했다.

 

↑ 눈밭에서 마냥 행복한 Vivek
강아지가 따로 없다.

 

↑ 나와 Yenina

 

↑ 폐가는 우리의 놀이터?!

 

 

우리의 목적지인 푼힐로 가는 가장 난코스는 어제 지났던 계단길이었다. 그 길을 지났기에 오늘의 산행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목적지인 고라파니에 도착하였다. 아쉽게도 그 전에 서로 걷는 속력이 좀 달라져 우리는 Yenina, Niraj일행과 헤어져야
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산에 있는 한 또 오늘, 혹은 내일이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미 점심 때가 훌쩍 지나 있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롯지로 들어갔다. 고라파니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라서 롯지도 참 많고,
그 안에 시설도 꽤 좋았다. 우리가 들어간 롯지 안에서는 영국인 배낭여행객 3명이 사이좋게 포커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Hi~'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Hi~'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더 물었다. "!!@#$!@$%@^'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우리의 교육은 주로 미국식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일까?
딱딱 끊어지는 영국식 영어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러나 네팔에선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Vivek은
좀 더 편하게 이야기했다. 주로 나와 Vivek의 관계에 대해 물었는데 내가 우린 무려 6년 이상된 펜팔이라고 이야기하자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더욱이 우리가 나야풀에서 이 곳 고라파니까지 한나절 반만에 올라왔다는 소리를 듣고 더욱 놀라워했다.
그 일행은 무려3일이나 걸렸다고 했다. 그러고도 힘들어서 오늘 하루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이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난로에 젖은 신발을 말리고 불을 쬐며 밥을 기다렸다.
그 때 마침 Vivek이 무언가를 들고 나에게 왔다.
책들이었다. 이 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이후에 올 사람들을 위해 남겨놓고 간 책들이었다.
일본 그림책, 미국책 등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책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의 맨 앞페이지에는 그 책을 남기고 간 사람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었다. 그런 곳에서 그런 글을 발견하니 웬지 찡한 기분이 들었다.

 

 

↑ 난로에 발을 말리며..

 

 

↑ 식사를 기다리며...

 

 

네팔에서는 식사를 주문하고 시간이 꽤나 지나야 음식이 나온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동안 마침 네팔의 국민 게임인 그 게임을 해 보았다. 역시나 게임의 소질이 없는 나는 백전백패였다.

 

점심으로 역시나 달 바트 타카리를 먹고, 우리는 다시 푼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밥을 든든히 먹고 난로에 몸을 녹이니 이제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내가 싫었던걸까?
갑자기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우리는 길을 헷갈리고 말았다.
갈림길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Vivek은 근처의 롯지에 들어가 길을 물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숙소를 잡아야겠다고 했다.
아직 고라파니를 벗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게다가 날도 저물기 전인데 오늘의 트레킹을 끝내야겠다고 하니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꼭대기인 푼힐에는 숙소가 없기 때문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꼼짝 없이 산 속에서
얼어죽는다고 했다. 고라파니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새벽에 일찍 출발해 푼힐에서 이른 아침 해 뜨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했다.

나와 Vivek은 준비 부족을 실감하며 숙소를 잡았다. Vivek은 여러 개의 롯지중에 나보고 숙소를 고르라고 했는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싶었던 나는 대충 건물의 형태를 보고 좀 깨끗해 보이는 곳을 지적했다.
왠지 핫 샤워가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오였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 날 머문 롯지는 내가 머물렀던 롯지중에 가장 최악이었다.
이미 유럽인 단체 관광객이 온 롯지를 장악하고 있는데다가, 결국 저녁에는 전기마저 나가서 먹먹한 어둠 속에 갇혀야 했다.
게다가 고도 2080m인 그 곳은 정말 엄청나게 추웠다. 핫샤워는 커녕 물이 나오지도 않고, 세면대도 없었다.

 

 

↑ 저무는 햇빛에 의지해 론리플래닛을 읽는 나

 

↑ 눈 속에 파묻혀버린 롯지


 

 방에 들어가있으면 거의 얼어죽을 지경이라서 어쩔 수 없이 홀로 나와있어야 했는데, 그 홀은 정체모를 유럽인 관광객들로
너무나 시끄럽고 부산했다. 그들은 스무명 가까이 되었는데 가이드와 포터는 물론, 요리사까지 고용해서 굉장히 대규모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도 아닌 다른 언어였으므로 나는 정체모를 언어로 끊임없이 떠드는 그들이 좀 두려웠다.

두려움과 추위.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일까?

나의 경우에는 추위였기 때문에 나는 그 부산함과 어색함, 두려움 속에서도 계속 홀의 난로곁을 떠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Vivek과 나는 거의 계단을 기어서 3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초라고는 10cm정도의 몽당초를 딸랑 하나 주었을 뿐이므로 나와 Vivek은 한 방에 모여있어야 했다.
너무 추웠기 때문에 Vivek의 방에서 초를 가운데 켜놓고 이불을 뒤집어 쓴 다음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확실히 횟수로 7년의 인연은 예사 인연은 아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런데 그 방은 춥다 춥다 이렇게 추울 순 없다 싶을만큼 너무나 추웠다.
다른 방과 달리 건물의 맨끝에 위치한 그 곳은 방의 네 벽중 두 개가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의아하게 여겼던 내가 커튼을 훽 젖혔더니 세상에! 벽이 없었다. 벽 전체가 얇디얇은 유리였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침대를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너무 웃겨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Vivek도 그 상황에서 우스꽝스럽게 절망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웃겼다.
그 이후에도 여행이 힘들 때면 Vivek은 나에게 고라파니에서의 자기 방을 떠올리라고 하며 웃음을 주었다.

 

좀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방에서 재울 수는 없는 노릇..
불쌍한 Vivek을 얼음방에 남겨둔 채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 곳에는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없었으므로 나는 열심히 지고 올라온 Vivek에게는 미안하지만,
생수를 조금 덜어서 그걸로 씻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곧 잠에 빠졌다.
너무 추웠지만, 이미 피로가 극도로 쌓여 있었으므로 바로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푼힐로 출발해야만 했다.

 

 

고도 2080m의 추위 속에서 나는 어떤 꿈을 꾸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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