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기 ⑥



 


↑ 포카라 호수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스투파(Stupa)에 가기 위해 포카라 호수를 건너야만 했다.
Vivek이 뱃사공들과 흥정하는 동안 난 호수 주변을 돌며 포카라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머금었다.

따사로운 햇볕, 반짝이는 잔디, 푸른 하늘과 여유로운 소들의 걸음.
아마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네팔에서 내가 마음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던 것은..
긴장이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었다.

 
  흥정을 끝낸 Vivek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뱃사공 아저씨가 손수 노를 젓는 완전 수동식 나룻배를 탔다.
덜덜거리는 모터 소리 없이 아름다운 풍경 안에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Vivek과 나도 별다른 대화 없이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 평화로운 포카라 호수 한가운데에서
 


  내가 사진 한 컷을 찍어도 되냐고 뱃사공 아저씨에게 말하자,
아저씨는 흔쾌히 "Yes"라고 대답하셨다.
아저씨는 네팔의 남자용 전통모자를 쓰고 계셨다.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 슥슥 젓는 것 같은데 배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건너편 땅에 도착하자 아저씨는 먼저 풀쩍 뛰어내려 물 속을 첨벙첨벙 걸어 배를 땅 근처로 끌어올려
젖지 않고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Vivek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스투파를 모두 보고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고 한다. 왕복 요금을 모두 치뤘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Vivek은 스투파에 가기 위해 약간의 등산을 해야 했다. 스투파가 산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구비, 한 구비 돌 때마다 포카라 호수가 저만큼 멀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작아지는 모습이 신기해서 나는 자꾸만 사진을 찍었다.

  

↑ 산에 오르다 잠시 쉬며 찍은 포카라 전경


↑ 저만큼 뒷걸음친 포카라.
산 위에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 보여
나는 왠지 모를 놀라움에 젖었다.

 

   30분 이상 산을 올랐을까? 어느덧 정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보인 것은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야자수였다.
네팔은 지금 한겨울인데, 산꼭대기에는 야자수가 자라고 있었다.

 

 


 

   휴일이라 가족끼리 나들이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의 모습이 신기한지 자꾸만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굽이를 더 돌자, 드디어 커다란 스투파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 처음으로 만난 거대한 스투파
 

 

  스투파는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고 있는 네팔에서 불교 쪽의 유물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일종의 탑 정도일까?
하지만 그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온통 하얗게 칠해진 스투파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나는 좀 흥분했다.
같은 '불교'의 유물임에도 이렇듯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스투파에 마음대로 올라갈 수는 있지만, 신을 신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맨 아래에 신을 벗어놓고 맨발로 스투파를 올랐다.
꼭대기에는 방위마다 다양한 부처의 상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 바람에 펄럭이는 원색 깃발은 불교를 상징한다.
깃발 위에 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경문이 적혀있다고 한다.

  

 
 
 


  

  스투파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햇볕을 쬐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Vivek도 사진을 찍고 혹은 얘기를 하며 스투파 주변을 빙빙 돌다가 내려왔다.
주변의 매점 비슷한 노점에 가서 음료를 샀는데, 노점 주인이 나에게 기념품도 사기를 권유했다.
팔찌며 목걸이같은 것이었다. 별로 내키지 않아 그냥 가려 하자, 주인이 일본어로 뭐라뭐라 했다.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나보다.
내가 웃으며 "I'm not Japanese"라고 말하자, 그는 이번에는 "Are you from China?"라고 물었다.
내가 "No"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한국인임을 알아차렸다.
Vivek이 이 곳에 한국인이 자주 오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스투파 주변에 일본어로 기념문이 세워져있었다.
짧은 한자실력으로 읽어보니, 일본이 유물 복구 및 보존에 많은 부분을 기여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어느새 늦은 오후의 해가 기울고 있었다.

 

 

↑ 나

↑ Vivek

 

↑ 내려가던 길 위의 돌담집.

↑ 일직선으로는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있던 문.
종교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쉽게 지나갈 수 없다는 의미인걸까?

 

↑ 길을 가로막고 서 있던 깜장 소.

 

 

  우리가 산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자 사공 아저씨는 다시 배를 끌어냈다.
산 꼭대기의 스투파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안에 놀라울만큼 긍정적인 에너지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평화롭지만, 조금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졌던 온 세상이 이제는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까는 아름다운 풍경과 구경자 정도의 역할이었는데, 이제는 나 역시 풍경의 일부가 된 기분이었다.

침묵 속에 호수를 건너던 아까와는 달리 Vivek과 나는 재밌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장난을 쳤다.
Vivek이 사공 아저씨에게 노를 저어보겠다며 바닥에 놓여 있던 여분의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보고도 한 번 저어보라 했다. 나도 노를 받아 열심히 저어보았는데,
사공 아저씨가 몇 번의 몸짓으로 쓱쓱 쉽게 나아가는 것과는 달리 너무나 어려웠다. 노도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어설픈 나의 몸짓에 사공 아저씨가 잇몸을 드러내며 허허 웃었다.


 

↑ 열심히 노를 젓는 Vivek


↑ 고요한 호수 위를 끝없이 퍼져나가는 파장

 

  호수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었는데, 그 섬 전체도 사원이라 하였다. 
불교스투파로 가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힌두 사원이라니!

Vivek은 사공 아저씨게 부탁하여 잠시 섬에 들를 수 있도록 해줬다.
힌두 사원은 불교 사원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 섬 위의 이름모를 힌두 사원

 

↑ 사원에서 바라 본 늦은 오후의 호수.
'내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사진이 나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 바로 위의 사진을 찍고 있던 나.

를 Vivek이 찍은 것.

 

  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육지를 향했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평화롭고 기분좋은 행위였기에 나는 땅이 가까워지는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 가까워지던 땅.

 

↑ 역시 위 사진을 찍고 있던 '나'

를 찍은 Vivek의 사진.


↑ 곧 모습을 감출 햇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포카라 시내 여행을 모두 마친 우리는 마지막 코스였던 포카라 호수를 떠나기가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잠시 잔디밭에 앉아 쉬기로 했다.
저 멀리 커다란 카메라를 든 남자와 마이크를 든 여자가 호수 주변을 온통 바지를 적신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Vivek이 잠시 그들을 살피고 돌아오더니, 'National Geography'에서 나왔다고 했다.
네팔은 자연이 파괴되지 않고, 희귀 생물이 많이 살고 있어서 자주 외국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찾아온다고 했다.
그들은 호수 주변 생물을 촬영하는 것인지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들과 우리들, 몇몇 사공들 이외에는 호수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정말 한껏 평화를 들이킬 수 있었다. 해가 지는 호수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줄곧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우리는 다시 말을 잃었다.

   

 
 
 


  

  빠르게 해가 지던 호수 주변에는 그렇게 소수의 사람들과 많은 소들, 그리고 독수리가 있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동물들에게 다가가도 그들은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슬쩍 눈동자를 돌려
나를 보고서도 다시 제 할 일을 묵묵히 계속해 나갔다. 그들에게 사람은 위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침내 해가 지자 우리는 호수를 떠나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좀 쉬다가 점심에 갔던 그 가게로 다시 한 번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 곳에서 Vivek이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많이 놀랐고, 부끄러웠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을 수 있을까?
먼 미래는커녕 하루하루 다음 날의 일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숨쉬는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통나무처럼 느껴졌다.

  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답게 보인다.

  하고, 늘 생각하지만 왜 정작 나 자신은 그리 되지 못하는건지...

 
  나는 Hot lemon tea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네팔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웠고, 역시나 어김없이 밤만 되면 정전이 되는 네팔의
사정 덕분에 손전등으로 힘들게 불빛을 비추며 샤워를 하고는 일찍 쉬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이었다.
나는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채 잠이 들었다.

이제는 히말라야로 고! 고! 고!

 

 

 

 

 

마지막으로 아쉬우니까 포카라 호수의 풍경 하나 더. ^^

 

 

 

The peaceful place, Pok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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