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기 3

 

2012.12.25.

 

 

 

 

■ 일행을 기다리며...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20년 전의 오늘은 항상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2012년의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일상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한 챕터를 읽고 샤워하러 갔다. 밤새 땀을 많이 흘렸었다.

샤워를 하고 돌아와서는 돈 계산을 했는데 하면할수록 우울했다.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중 가서는 카드로 계산해야 할 것 같았다.

아프리카가 왜 이리 유럽인들의 휴양지가 되었는지, 왜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돈 생각으로 좀 우울했지만 기운을 내려 애썼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

 

 

 

 

 

↑캠핑장의 럭셔리한 실내수영장.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이미 유명한 휴양대륙이 되어있는듯 했다.

 

 

 

 

일기를 쓰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유시민의 책을 읽고 센델의 정의도 읽고 지난 문자도 보고 하다보니 시간은 잘 갔다.

그러나 10시에 온다던 투어 팀은 12시가 되어도 오질 않고 나는 결국 텐트에서조차 체크아웃하여 쫓겨났다.

짐을 리셉션에 맡기고 어쩔 수 없이 식당에 왔는데 크리스마스라 메뉴가 오로지 하나였다.

정체불명의 비싼 메뉴.

 

 

 

 

시작은 새우 칵테일이라는 메뉴였다.

새우가 야채와 함께 마요네즈 드레싱에 담궈져 있었다. 파르페처럼 꾸며져 나온 것을 보고 난감해졌다.

이것을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 도구도 없이 덩그라니 나온 것을 보니 이름 그대로 칵테일처럼 마시라는 것 같은데 도무지 그 음식을 마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포크를 달라고 하자 찻숟가락을 가져다주었다.

맛은 그냥 그랬다.

삶은 새우를 마요네즈에 담근 맛이었다.

 

 

 

↑ 정체불명의 새우칵테일

 

 

 

 

이제 메인 요리가 나왔다. 커다란 고깃덩이 네 개에 완두콩, 호박, 당근, 감자칩과 밥이었다.

그와 함께 커리용 그릇에 정체불명의 드레싱이 있었다.

드레싱은 땅콩맛이 났는데 꽤 괜찮았다. 문제는 어디에 쓰느 드레싱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이곳저곳 부어먹었다.

 

 

 

음식은 양이 엄청 많고 대체로 기름져서 반을 먹기 전에 이미 배가 불렀다. 그러나 남기기에는 아까웠으므로 꾸역꾸역

먹을 수 있는 데까지 먹었다. 그 결과 고기 세 덩이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먹었다. 고기는 정말 무리였다.

 

 

 

 

↑ 크리스마스 특별 메인 요리 -_-

 

 

 

 

배가 터질 지경까지 먹고 치웠는데 디저트가 있었다.

아마 3만원란 가격을 맛이 아닌 양으로 승부할 셈인 것 같았다.

푸딩이라 이름 붙은 그 음식은 요거트와 빵과 사과였다.

먹고 죽을 지경이 되어도 먹자는 생각에 열심히 먹었다.

 

 

 

 

↑ 역시 정체불명 디저트

 

 

 

 

 

■ 아프리카트래블코팀과의 첫만남

 

 

 

오랜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갑자기 리셉션 직원이 식당으로 나를 부르러왔다.

드디어 아프리카트래블코가 도착했다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반갑던지 허둥거리며 나가다 식당 난간에 다리를 찧었다.

가이드는 해스본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첫인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더 기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양인들 사이에서 왕따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나에게는 꿀같은 소식이었다.

바로 투어그룹 안에 한국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그러나 해스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사람들이 그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해스본과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무척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영어를 할 수 있길 바라며...

물론 나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해스본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잠비아쪽 빅토리아폭포를 보러 갔다고 했다.

일단 트럭을 소개해주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드디어 한달간 나의 함께 여행할 트럭을 마주하였다.

트럭의 첫인상은 사실... 조금 실망이었다.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캠핑장에 머물며 다수의 캠핑카를 보아온 나에게는 기대보다는 조금 이하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약간 실망한 아프리카트래블코의 트럭

 

 

↑ 식사준비가 세팅된 모습. 매 식사 때마다 위와 같이 세팅하여 요리하고 식사한다.

 

 

 

 

어쨌든 나는 또 한달간 여행을 함께 할 두 사람을 만났다.

요리사 존(John)과 운전기사 스티브(Steve)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해스본에게 현지에서 지급하기로 한 로컬페이 410$를

낸 후, 향후 일정에 대해 잠깐 브리핑을 들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잠깐 어떤 독일 할아버지가 트럭에 들렀다. 뭘 두고 간 모양이었다.

이름은 토마스(Thomas)라 하였다.

해스본은 나를 유일한 한국 사람과 같은 텐트를 쓰게 할 모양이었는데, 그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마 그 한국인이 그걸 원치 않을 거라고 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일단 모든 일행이 빅토리아 폭포를 보러 가서 트럭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는 존에게 다가가 요리를 도와줄까 물었다.

그러나 존은 오늘은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존에게 말을 붙이며 대화를 좀 나누다 존이 점점 바빠져 혼자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때였다.

 

내 앞을 익숙한 차림의 한국 아저씨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책을 읽던 나를 보고 그분도 "어?" 하며 바라보았다.

이 분이 바로 그 유일한 한국 사람이었다.

 

 

일단 한국말로 말하는게 좋아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분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 한국인이 2명 온다고 들었는데, 한 명인 점. 또 본인 또래의 한국인일줄 알았는데 굉장히 젊은(???) 여자인 점 등이

당황스러웠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나 역시 이렇게 험난한 아프리카 여행에 부모님 또래의 아저씨께서 오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반가워하며 내 짐을 텐트촌으로 옮겼다.

텐트촌에는 이미 모두 텐트를 다 쳐놓은 상태였다.

나중에 다시 해스본에게 누구와 텐트를 써야 하냐고 물으니 혼자 온 여자가 있으니까 그 여자와 쓰라고 했다.

 

 

모두들 빅토리아 폭포에 갔는데, 그분은 노트북 등을 충전도 해야 하고, 이미 짐바브웨쪽에서 만족할만큼 사진을 찍어서

따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본업은 사진기자이시고,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는 여행사진을 찍어 팔기도 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장비가 어마어마했다.

엄청 좋은 니콘 카메라 두 대에 노트북 하나, 아이패드 등.

어제 그제 빅토리아 폭포랑 내가 함께 하지 못했던 쵸베 국립공원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엄청났다.

내가 찍은 사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헬기에서 찍은 빅토리아 폭포는 그 위용이 크게 달라서 웅장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텐트촌 잔디 위에 나란히 서서 사진 이야기, 한국 이야기, 선거 이야기, 이 여행 이야기 등을 오랜 시간 나누었다.

어디 앉고 싶긴 했는데 이 텐트촌은 개미가 기승이라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빅토리아 폭포로 갔던 나머지 일행들이 돌아왔다.

 

우리의 일행은 아까 위에 언급한 가이드 해스본, 요리사 존, 운전기사 스티브, 나와 유일한 한국인 Y, 독일인 노부부 Thomas와

하이카, 호주에서 온 브레드, 미국의 제시카, 독일 커플 앙드레와 스테파니, 영국에서 온 파키스탄과 인도계 영국인 애즈,

브라질 커플 멘웰라와 크리스였다. 총 15명.

내일 루사카에서 2명이 더 합류한다고 했다. 그럼 총 17명.

 

 

이 중 나는 미국의 제시카와 한 텐트를 쓰게 되었다.

왕따당할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두모두 성격이 엄청 좋아보였다.

 

 

우리는 잠비아 강을 보며 간단히 음료를 마시기로 했다.

 

내가 진절머리내던 식당에서 음료를 주문해 내가 실컷 구경하던 잠비아 강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고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약간 쓸쓸하게 느껴져던 풍경이 이제는 일행이 있어서인지 풍요롭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음료를 들고 일몰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 아름답던 잠비아 강의 일몰

 

 

토마스와 하이카 부부는 원래 독일 저널리스트인데 현재는 아프리카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르완다가 참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라며 칭찬했는데, 아직까지 르완다의 내전과 난민 이미지가 강했던 나에게는 좀 놀라운 이야기였다.

르완다는 심지어 정부에서 비닐봉지 사용도 금지할 정도로 친환경적이며 거리도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그들은 이제껏 Y에게 카메라 배터리를 빌리고 싶었는데, 그가 영어를 하지 못해 빌리지 못했다며 대신 말해달라고 했다.

대신 전해주었더니 Y는 기꺼이 주었다.

내가 합류하여 일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해가 지고 우리는 식사를 하러 트럭 근처로 돌아갔다. 메뉴는 카레.

Y는 여기 식사가 정말 보잘것없다 하였는데 나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정신없어 크게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만 먹었다.

브라질 커플은 둘만의 세계에 빠져 일몰을 감상하느라 식사에 늦었다. 그래서 트럭 청소에 당첨되고 말았다.

 

 

식사 후에는 세 개의 단계를 거쳐 그릇을 설거지해야 했다.

 

설거지까지 마친 후 제시카가 이미 혼자 낮에 쳐놓은 텐트로 들어가 구역을 나눈 후 침낭을 펴 잠이 들었다.

 

 

좋은 일행들을 만난 것 같아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되었다.

왠지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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