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alaya'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4 네팔여행기 ⑩
  2. 2009.05.05 네팔여행기 ⑨

네팔여행기 ⑩



산 속에서의 링반데룽을 경험한 어제의 혹독한 체험으로 체력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걸음을 지체하거나 쉬고 있을 여력은 없었다.
아침 일찍 Tatopani(타토파니)에서 눈을 떠 보니, Yenina와 Niraj일행은 아침 산책을 나가고 없었다.
나와 Vivek은 일단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네팔 방문 이후 가장 호화롭던 식단이었다.


<↑초호화 식단??>



<타토파니 마을 전경>


<우리가 지난밤 뛰어들었던 강>


 우리가 식사를 다 마치도록 Yenina일행이 산책에서 돌아오지 않아, 우리는 먼저 길을 떠나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치곤 했기에 걷다보면 또 어디선가 만나게 될 거라고 Vivek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기대치 않은 상태에서 늘 마주치던 Yenina일행은 우리가 그렇게 예상한 그 시점부터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달까.
우연은 우리가 기대를 품게 되는 그 순간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게 아닐런지.

아무튼 그 날 우리는 Beni를 거쳐 결국 포카라에 가기까지 다시 무수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히말라야 산 속의 학교>


<야외수업중???>

 


<길에서 마주친 검은소>


<자유롭게 산 속을 활보하는 소 떼>


<역시 험난하던 하산길>


 Beni에 도착해 드디어 힘들던 히말라야 트래킹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포카라까지 트럭을 타고 가야했는데, 푼 힐Poon Hill에서의 심한 추위로 독감에 걸린 나는 몸 상태가 매우 안좋았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아래에서도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몸을 덜덜 떨었다.

트럭을 기다리며 앉아있자니 속속 하산하는 일행들이 눈에 띄었는데, 아쉽게도 익숙한 얼굴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는 좁은 트럭의 뒤에 올랐다. 사람들을 꾹꾹 눌러 태운 트럭은 매우 비좁았다.
어마어마한 흙길을 달리는데 정말 먼지가 마치 소독차 달리듯 뿌옇게 피어올라서 나는 계속 마른 기침을 쏟아내야 했다.
눈도 너무 따가웠고, 목도 아팠다.

여차저차하여 간신히 포카라 도착!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입 안 먼지가 가득한 느낌이라 침을 바닥에 뱉었는데, 놀라울만큼 까만 색이었다.
몸 깊숙이까지 먼지가 한가득 들어간 느낌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나는 거의 기진맥진하여 먼지 뒤집어쓴 몸을 씻을 생각도 못한채, 옷이나 신발을 벗을 생각도 못한채,
침대 위에 큰 대자로 뻗어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종일 몸을 쉬어야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을만큼 몸 상태가 안좋았다.

그러나 Vivek은 호텔 주인과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며 뭔가 분주한 느낌으로 왔다갔다 했다.
조금 심각한 얼굴이라 내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참 후, 방으로 들어온 Vivek이 매우 안쓰러운 얼굴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는데, 정말 절망적이었다.

내일부터 포카라의 버스업체가 모두 파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 파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며, 따라서 잘하면 한동안 카트만두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게 아닌가.
아찔했다.
예정된 출국 일정에 꼭 출국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Vivek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질렸다.
Vivek의 말에 의하면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은 바로 오늘! 그것도 지금 당장 출발하는 것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져가는데 그 밤중에 다시 여정이 시작되다니...!!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미 카트만두까지 가는 직통버스는 모두 끊겨버렸고,
우리는 뭉링 Mungling이라는 지역까지 포카라 버스를 타고 오늘 당장 가서 그곳에서 다시 카트만두행 버스를
갈아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파업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행객들 모두 비상이 걸린 상태라 뭉링까지 가는 버스마저도 구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한시라도 빨리 버스정류장에 가보는게 상책이었다.

더 이상 손끝하나 까딱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위기 상황에서는 없던 힘이 솟아나는지
나는 다시 베낭을 매고, 발걸음을 떼었다.

버스 정류장은 어마어마한 상태였다.
파업 준비중인 버스 기사들과 시민들의 시끄러운 항의가 혼재되어 너무나 어지러운 모습.
게다가 Vivek 역시 너무 초조한 상태라 넋이 나간 나를 그 혼란 한가운데 버려두고 혼자 이리저리
표를 구하러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머릿 속에 아무생각이 안들고 그저 멍했다.

Vivek이 표를 구하러 동분서주한지 한 두 시간여가 지났을까.
간신히 버스의 표를 구해온 히어로 Vivek!
우리는 매우 좁은 버스에 몸을 싣었다.
짐칸을 따로 마련해주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자기 몸집만한 배낭을 무릎위에 얹은 상태로 이동해야 했다.
버스 안은 좌석 뿐 아니라 통로, 계단할 것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가뜩이나 다리가 짧은 나마저도 무릎이 앞좌석에 꽉 차게 닿아 아플정도로 좌석이 좁은 상태에다
위에 베낭을 안고, 초과인원을 훨씬 넘은 사람들이 탄 버스는 마치 전쟁포로들의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초호화식단으로 식사를 한 후, 종일 굶은 상태였는데다
감기 몸살은 점점 몸을 파고들어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드디어 Mungling을 향해 버스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밤 9시.
기절에 가까운 상태로 버스를 타고 있다기보다 버스에 실린듯한 느낌으로 정신은 혼미해졌다.
한 대여섯시간을 달렸을까.
드디어 버스가 Mungling에 섰다.
새벽 두세시쯤 된 어정쩡한 시간.
앞으로 카트만두행 새벽 버스가 올 때까지 길 한가운데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내 몸 상태가 이미 한계에 이르러있는 것을 알아챈 Vivek은 또다시 동분서주하며 쉴 곳을 찾으려 노력했다.
간신히 낡은 호텔을 찾았는데, 정말 놀라울만큼 지저분하고 낡고 위험해보였다.
야쿠자같이 생긴 주인은 연신 하품을 하며 뭐라뭐라 말했는데, 돈을 더 줄테니 음식을 준비해달라는 Vivek의 요구에
달 바트 타카리라는 네팔 전통음식을 준비해주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입맛에 잘 맞아 늘상 좋아하던 달 바트 타카리가 너무 맛이 없었다.
위생 상태도 안좋은듯 했다.
먹는둥마는둥 하고 내 방에 들어갔는데, 방의 상태는 정말 눕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더 이상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 문을 잘 잠그고 난 뒤 옷을 벗지도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Travel > Nep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여행기 ⑨  (0) 2009.05.05
네팔여행기 ⑧  (0) 2009.05.04
네팔여행기 ⑦  (0) 2009.05.04
네팔여행기 ⑥  (0) 2009.05.01
네팔여행기 ⑤  (0) 2009.05.01

네팔여행기 ⑨



새벽 4시에 일어나 Poon Hill에 오르기로 약속했건만, 5시가 다 되도록 Vivek은 일어나는 기색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간단히 다이어리 정리도 했다.
5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이 차차 Poon Hill을 향해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초조함을 견딜 수 없어
직접 나가 Vivek의 방 문을 두드렸다.
그동안 부지런히 먼저 일어나 문을 두드렸던 Vivek은 정작 가장 중요한 날엔 늦잠을 자고 말았다.

5시반부터 시작된 우리의 강행군.

한국에서 준비해간 손전등은 우리가 막 롯지 문을 나서자 배터리가 다 되어 꺼져버렸다.
우리는 스틱도, 눈 길을 걸을만한 등산화도, 불빛도 없이 어두컴컴한 눈길을 걸어야 했다.
좁고 어둡고 미끄러운 눈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정말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칠흙같은 어둠 속을 그저 긴 불빛의 행렬을 따라 끝없이 걸을 뿐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물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빛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꼭대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

어느새 구름이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바로 이 곳이 Poon Hill of Mt. Himalaya였다.
꼭대기에는 우리보다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옹기조기 모여 대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의 뒤에도 부지런히 올라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산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재밌게도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가 산을 오르며 지나쳤던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Nick과 중국인 일행들, 유럽인들, 그리고 두 친구 중 Nepali guy인 Niraj 등등..
함께 사진을 찍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빛의 베일은 벌써 세상을 덮었는데도 모체인 태양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우리는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일출을 기다려야 했다.
해발 3000m의 추위는 뼛속 깊이 파고들어 나는 벌벌 떨며 파랗게 질려버렸다.
한 쪽에서 장사꾼이 엄청 비싼 값에 hot tea를 팔고 있었는데, Vivek은 불쌍한 나를 위해 tea를 사주었다.
얼마 가지 않았지만 작은 온기가 얼마나 소중하던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짙은 오렌지빛의 태양이 드디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을 호박색으로 덮더니,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 빠른 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0123456789



세상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짧은 시간안에 오렌지빛은 투명한 가시광선으로 변하였다.
장엄한 풍경은 파도에 씻긴듯 사라지고 다시 일상적인 풍경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아쉬웠지만 입이 돌아갈만큼 어마어마한 추위에 우리는 다시 지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사실상 베이스 캠프가 있는 해발 5000m까지 올라가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Vivek은 동의하지 않았고, 나 역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3210m의 PoonHill이 반환점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미끄러운 길을 내려가 Ulleri(울레리)에 도착했다.
PoonHill에서 만난 Niraj와 함께 하산하기로 결정했기에 우리는 짐을 챙겨 Niraj와 Yenina가 있는 롯지로
이동했다. 불쌍한 Yenina는 지난 몇 일간의 트레킹으로 몸져 누워있었다.

올라온 길은 Naya Pul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다른 경로를 통해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목적지는 Totapani(토타파니)! Pani는 네팔어로 '물'이란 뜻이고 'Tota'는 '뜨겁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Totapani'는 '온천이 있는 곳 = 핫샤워가 가능한 곳'이었다.
네팔에 온 후 단 한번도 뜨거운 물로 샤워하지 못해 지쳐있는 나를 위해 Vivek이 경로를 그쪽으로 잡은 것이다.


아침부터 멋진 일출을 보았기에 우리는 꽤 들떠있었다.
Yenina도 약을 먹고 회복이 된건지 우리 넷은 계속 떠들면서 산을 내려갔다.
눈으로 덮인 산을 하산하는 것은 등산보다 몇 배 더 힘들었다.
나는 공항에서 걸렸던 아이젠을 꺼내 신발에 장착했다.
뜻밖에도 기대 이상의 효과로 나는 전혀 미끄러지지 않으며 내려갈 수 있었다.
아이젠의 뾰족한 끝이 두텁게 쌓인 눈 위에 푹푹 박혀 쉽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아이젠이 없는데다, Yenina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정말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내려갔다.




↑ 내려가는 길에 발견한 귀여운 눈사람♡


 

↑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좋은 Yenina와 Niraj
(Niraj는 스틱이 없어 나뭇가지를 뾰족하게 갈아 스틱 만드는 중)

 


↑ 우리가 택한 하산길은 아직 정부와 마오이스트의 경계지역이라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자 Yenina에게 호신술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선 어설픈 남자 Niraj.
찍다가 너무 웃겨서 쓰러질 뻔....
Niraj보다는 Yenina가 더 든든해보인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꽝꽝 두껍게 얼어있는 눈들은 점차 녹아 사라지고,
마른 땅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같은 계절인데도 고도에 따라 이렇게까지 차이나는 기온이 무척 신기했다.
따스한 기운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 고도가 낮아질수록 변화하는 풍경들


 
↑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는 히말라야의 가족들


 
↑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하던 네팔 어린이 ^^


 
↑ 마오이스트의 흔적.
슬픈 내전이 아직은 완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참을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Niraj와 Yenina는 보이지 않았다.
걸음의 속도가 달랐던 까닭이다.
나와 Vivek은 내려갈 때도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 작은 마을들을 지나가게 되는데, 돌로 만든 계단을 지나 마을을 통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두운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던 한 네팔 아저씨가 나를 불러세우는 것이 아닌가.

"Are you Korean?"

이제껏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하는 말은 들어봤어도 네팔에서 한국인임을 단번에 알아챈 사람이
한 번도 없었기에 신기한 마음이 들어 "Yes"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맨발로 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자기는 한국인을 좋아한다며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나와 Vivek은 얼결에 집 안으로 안내받았다.

안내된 의자에 앉자마자 온 집안 식구들이 모두 나와 나를 에워쌌다.
아저씨는 서랍을 마구 뒤지더니 앨범을 하나 꺼내들었다.

알고보니 아저씨의 남동생이 한국에 일을 하러 갔다가 그 곳 공장장의 딸과 결혼했다고 한다.
아저씨는 남동생의 사진, 그리고 제수가 되는 한국 여자분의 사진을 보여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나 많이 펴 보고, 만지고 했는지 앨범 속 사진은 닳고 닳아 있었다.

한국으로 간 후 남동생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간간히 전해주는 소식에 의하면 한국에서 너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했다면서
다 한국 사람들 덕분이라고 했다.

그 집안 식구들이 친척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 내 마음 역시 뭉클해졌다.

나는 차를 대접받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그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저마다 서로 나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 남이 얘기하든 말든 동시에 여러 사람이
말을 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특히 놀랐던 것은 전혀 정규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 집 큰 아들의 그림 솜씨였다.
그냥 집에서 펜으로 그렸다는 그의 그림을 보고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정말 놀라운 재능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그림을 설명했다.





↑ 정말 깜짝 놀란 그림 실력
일본 사람이 준 펜으로 그려서 일장기와 네팔기가 그려져있다.
아마도 '하이테크' 인듯...



 
↑ 아저씨네 가족들과 함께...
큰 아들은 사진을 찍든말든 그림 설명에 여념이 없었다.


너무 따뜻한 대접을 받은데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아서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 집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나는 가족들과 손을 흔들고 헤어져야 했다.
큰 아들의 재능에 감동한 내가 도와줄 게 없냐고 묻자 큰 아들은 일본펜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에 가서 그 펜을 사서 보내주려고 했는데, 그 때 그 큰 아들이 적어 준 주소를 받은 Vivek은
나 몰래 그것을 없애고 말았다.
Ram의 경우도 그렇고, Vivek은 네팔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거나 친해지려 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다. Vivek의 자존심인걸까?
어쨌든 약속했으면서도 펜을 보내주지 못해 나는 여행 후에도 계속 마음이 아팠다.
이 소년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아저씨네 집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 점점 해가 땅을 향해 여정을 돌리고 있었다.
Totapani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Totapani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힘을 내어 힘차게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걸은 후 다시 다른 분에게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또 다시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의아해하며 다시 힘차게 걸었다.
한 시간 후 또 다른 분께 여쭤보았을 때도 또 한 시간을 이야기하셨다.
우리는 점점 지치고 힘들어졌다.
어떤 장소에서 묻든 Totapani까지는 계속 한 시간 거리였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Totapani는 나오지 않았다.







↑ 꼭대기는 한 겨울같이 추운데,
마치 화창한 봄날같은 산허리의 풍경


 
↑ 뛰어난 장사수완으로 귤을 팔던 예쁜 여자아이
나중에 뒤따라오던 Niraj 일행 역시 귤을 샀다고 했다.
귤은 정말 맛있긴 했다.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아무리 걸어도 Totapani는 나오지 않았고,
도무지 얼마나 남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Vivek은 계속 지나는 사람들한테 물었으나 모두의 대답은 똑같았다. '한 시간'
우리가 그렇게 헤매는 동안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산 속에서 해가 지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내려간다 싶더니 순식간에 어둠의 실루엣이 골짜기에 자리잡았고,
곧 깜깜한 어둠이 우리를 뒤덮었다.

어느새 트레킹 코스에서도 벗어나 우리는 험한 계곡의 어딘가에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 평탄하게 길이 난 트레킹 코스와 달리 우리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내려가며 헤매야 했다.
점점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손전등마저 고장난데다 달도 뜨지 않아서 정말 나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을만큼 어두웠다.
나는 어딘가에 계속 부딪히며 넘어졌다.
다리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무서움이 너무나 컸다.
한참을 걸은 후에 우리는 우리가 아까 맨 처음 출발했던 곳에 다시 왔음을 깨달았다.
머리털이 쭈삣 설만큼 공포스러웠다.

갑자기 그동안 그렇게 의지해왔던 Vivek마저도 의심스러웠다.
'일부러 나를 이런 이상한 길로 데려온 것이 아닐까?'
정말 한심하게도 그런 생각마저 들어서 나는 공포와 의심과 두려움으로 온 몸이 고슴도치처럼
예민하게 곤두섰다.
Vivek 역시 공포에 차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나라에 있는데다가 남자였으므로 애써
두려움을 숨기고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기절 직전인 나를 질질 끌다시피하며 계속 걸었다.

그렇게 두 시간 이상을 어두운 산 속에서 헤매자 나는 온몸의 통증에 무감각해졌고,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다.
그저 Vivek이 끄는대로 질질 끌려가기만 할 뿐이었다.

정말 어둠 속의 산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그 때,
갑자기 먼 곳에서 불빛이 보였다.
우리는 있는 힘껏 불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로 Totapani였다.
Totapani와 우리 사이에는 강이 있었는데, 우리는 몸이 물에 젖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 속으로 뛰어들어 건넜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만 Vivek이 세게 나를 잡아준 데다 다행히
수심도 내 키를 넘어서진 않아서 Totapani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Totapani는 너무 평화롭고 예쁜 작은 마을이었는데,
관광객들이 한가롭게 편한 차림으로 거리를 구경하거나 시원한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그 거리 한가운데를 우리는 물에 흠뻑 젖고 공포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통과해 걸었다.

Vivek은 거리를 돌다 적당해 보이는 숙소에 들어갔다.
나를 위해 hot shower가 가능한 곳을 찾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곳에 산 속에서 헤어져버린 Yenina를 만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이에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던 Yenina와 Niraj는
여유있게 Totapani에 도착해 쉬고 있었다.
그 많은 숙소들 중에 또 우연찮게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해 우리는 마구 웃었다.

손가락 하나 들 수 없을만큼 힘들었지만,
핫샤워를 할 수 있다는 주인의 말에 나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여 옥상으로 올라가 샤워를 했다.
네팔에 온 후 처음 온 몸으로 느끼는 온기였다.
수도장치가 매우 불편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따뜻한 물에 씻고나니 매우 노곤하여 나는 Vivek에게 인사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내 방으로 골인하여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정말 어마어마한 하루였다.



'Travel > Nep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여행기 ⑩  (0) 2009.09.14
네팔여행기 ⑧  (0) 2009.05.04
네팔여행기 ⑦  (0) 2009.05.04
네팔여행기 ⑥  (0) 2009.05.01
네팔여행기 ⑤  (0) 2009.05.01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