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발이 뜨겁다.
손으로 끈을 잡아당겨 화상이라도 입은듯 화끈거리는 양 발을 대충 구두에서 빼낸다.
구두 하나가 반동으로 풀썩 쓰러졌다. 뽀얀 흙먼지가 바닥에서 피어올라 빛 속에 부유한다.

집 안은 텅 비었다. 몇 달 전 이 곳을 나가던 그 때와 변한 것이 없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그 냉기마저도 그대로이다.
달라진 것은 나뿐인가.
낡은 나무 침대의 차가운 매트리스 위로 털썩 쓰러지니 맨 윗 단추까지 꽉 채운 제복의 목깃이 목을 조여온다.
빳빳하게 풀먹인 목깃은 6개월간 날을 세워 나를 위협해왔다.

오른팔에 힘을 주어 힘겹게 몸을 뒤집고, 왼손을 움직여 겨우 단추를 두어개 풀었다.
이제야 숨을 쉴 수 있다.
길고 느리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으니 등뒤로 매트리스의 거친 촉감이 싸늘하게 젖어온다.
'돌아왔구나'
손 끝으로 까끌한 매트리스의 겉면을 몇 번 쓸고나서야 비로소 실감하였다.
기다리는 이도, 맞아줄 이도 없는 이 곳에.
그래도 나는 여전히 돌아온 것이다.
멀고 먼 곳을 돌아 이제야 겨우.
그러나, 겨우 돌아온 제자리는 실상은 다른 자리임을 느낀다.

멍하니 천장의 얼룩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움직여 사방을 살핀다.
내동댕이친 구두는 바닥의 징을 살벌히 드러내며 나를 마주한다.

걷고, 걷고, 또 걷는 동안 너는 나의 벗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너는 나의 적이 되기를 선택하였다.
이 답답한 옷들도, 무거운 가방도, 그리고 너도 나를 짓누르기 위한 추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짓눌리기 위해 너희를 맞았다.
원치 않는 것을 손에 들고, 원치 않는 명령을 맞아 나는 기계처럼 고함을 지르고 내달렸다.
그러나 감정이 있기에 기계보다 비참했고 더 가련했다.
그것을 이끈 것은 바로 너희다.

나의 소리없는 절규와 모진 비난에도
구두는 말이 없다.
낡은 가죽은 속을 내보이며 묵묵할 뿐이다.

나는 또 다시 떠나야 한다.
그 때에 나는 나의 구두가 나에게 기능하듯 그들의 구두로서 기능할 것이다.
묵묵히. 말 없이.

눈을 감는다. 오른팔을 들어 눈을 가린다.
사방은 고요하여 내 심장 뛰는 소리만 공간을 채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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