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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고하토

고하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고하토'를 보았다.
사무라이 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내용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고,
신선조에 관련한 만화나 영화를 다수 봐왔기에 익숙한 이름도 꽤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거 내가 봐 온 신선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내용을 선사하였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본 후의 느낌은 다소 멍했다.
오시마 나기사라는 감독은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감독이라고 한다.
나는 들어본 바 없고, 영화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체로의 평을 보니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내용을
잘 표현해낸다고 한다. 그것은 나의 '멍함'과 조금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시종일관 야릇한 분위기를 내는 카노(마츠다 류헤이)의 표정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더욱 화면을
그런 분위기로 이끌었다. 감독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의도한 것 같다.

 이 영화는 대체로 히지카타(기타노 다케시)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신선조 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소문이 도는 등 흉흉한 분위기가 퍼져나가는데
그 모든 사실은 철저히 관찰자인 히지카타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딱히 이 영화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히지카타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단서를 제공한 채, 관객에게 추리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카노가 타시로와 결투하던 도중 무언가를 속삭이는 장면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그 말은 잘 들리지 않고, 그 장면을 훔쳐보던 소지나 히지카타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영화를 해결할 키워드가 될 수 있는 그 말.
그러나 감독은 끝내 그 키워드를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내 식대로 영화를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다.

카노는 '저에게 미래가 있나요?'라고 말할만큼 염세적이고, 미래에 대해 생각지 않는다.
더구나 '죽이기 위해서 신선조에 들어왔다'라고 말할만큼 살인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며 오히려 적극성을 띈다.
그것은 맨 처음 카노가 신선조에서 처음 처형을 할 때에도 강조된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히지카타는
누군가를 죽여본 솜씨라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카노와 타시로의 관계이다.
우선 타시로가 카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뚜렷하다.
시종일관 타시로는 카노에게 집적대고 관심을 표현한다. 감춰진 것은 카노의 마음.
내 생각에 카노는 타시로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둘은 사귀지도 않았다고 보여진다.
다만 카노는 타시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히지카타는 카노와 타시로의 결투 장면을 보며 둘이 연인관계라고 확신하게 되며, 공공연한 소문 역시 떠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카노가 의도한 것이라 생각된다.
카노는 그러한 소문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행할 살인의 정당성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 소문으로 인해 자신과 관계를 맺은 유자와가 살해되었을 때, 그 범인은 타시로로 지목된다.
질투에 의한 살인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또한 타시로인 척 하고 누군가를 습격하여 결국 타시로가 처형되게 하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 역시
둘이 사귀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애초부터 카노는 그럴 셈으로 타시로와 소문을 이용한 것이다.

 카노. 그는 이 영화에서 조금은 묘한 역할이다. 마츠다 류헤이를 처음 본 것은 '나나'에서였는데,
사실 그 역할을 맡기에 조금  어색함이 있었다. '고하토'에서의 카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신선조의 모든 남자들을 홀리고 다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마츠다 류헤이는 그 역할에 매우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눈에 띌만큼 꽃처럼 아름답지는 않으나,
일본 특유의 가는 선과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또한 그의 눈은 매우 유혹적이고 일종의 '색'이 엿보인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면서도 스스로 신선조에 자청해 들어온다.
혹자는 그것을 강간을 당하려다 강간범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영화의 본 내용에서 너무나 벗어난 추측이기에 일단은 배제해 둔다.
그는 앞서 말한대로 팜므파탈적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매우 위험해 보인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이용하려 하며, 살인을 즐긴다. 마치 모든 이의 여왕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은 매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쌩뚱맞게 이어지는 소지의 긴 이야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치 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듯 모든 이 위에 군림하던 카노는 결국 소지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것도 의견이 매우 분분)

그리고 그 직전 소지는 히키가타에게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동성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이야기는 아름답다고..
아마도 소지는 카노와 타시로의 사랑 이야기를 빗대어 말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결국 카노가 타시로를 아무런 망설임없이 베어버리자 소지는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소지가 돌아가서 카노를 베었다고 생각한다.

 카노에게 역시 헛된 미망을 품고 있던 히키가타는 카노가 죽는 소리를 들으며 눈 앞에 벚나무를 힘껏 베어버린다.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부장과의 관계마저도 흔들만큼 대단했던 카노.
'카노, 너는 너무 아름다웠다.' 고 중얼거리며 벚나무를 베는 히키가타의 모습이 처음에는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카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힘있게 끊어버리는 결심을 드러낸 것이라 짐작된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카노가 타시로에게 했던 비밀의 말을 소지만은 들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히키가타가 듣지 못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소지는 그 말을 들었고, 진상을 알았기에
몰래 되돌아가 카노를 죽였을 수 있다. 다만 히키가타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 말을 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각종 영화에 대한 글들을 읽고 알게 된 것인데, 소지는 사실 맨 처음 카노와 대결했던 사람이었다.
카노가 소지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매우 나를 헷갈리게 했다.
영화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으며, 히키가타가 어째서 그런 결론을 내린 건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히키가타의 추측이 맞다면, 카노가 순수 악처럼 군림하며 살인을 일삼은 것과 끝끝내 머리를 자르지 않은 것은
모두 소지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해, 소지는 카노의 사랑이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순수한 것이 아니라 베어버렸지만,
사실 소지에 대한 사랑만큼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카노는 신선조에 위험했다.
유일하게 신선조 내부에서 카노에게 홀리지 않았던 소지는
그 위험을 끊어냈다. 소지가 끊어낸 그것이 바로 고하토,
다시 말해 금기였을 것이다.

 

보고나서 매우 헷갈리던 영화.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고 확신할 수가 없는 묘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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