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8.4
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김인권, 장광
정보
드라마, 시대극 | 한국 | 131 분 | 2012-09-13

 

그 유명한 영화 '광해'를 나는 이제서야 보았다.

어릴 때는 나는 광해군을 폭군이라 배웠다. 연산군과 더불어 조선의 2대 폭군.

그러나 자라면서 새롭게 해석한 역사서를 읽게 되었고, 최근에는 연산군과는 달리 광해군에 대해 재평가하는 흐름이 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 역시 당시의 국제 정세와 조선 내부의 여러 상황을 아울러 보았을 때, 광해군은 폭군이라기보다는 적극적이며 개혁적인 왕이었으며, 다만 기어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왕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아 그간 오랜 세월 오해받아온 왕이라 판단하게 되었다.

 

영화 '광해'는 바로 그러한 최근의 역사적 재해석을 토대로 노골적으로 광해군을 편드는 영화이다.

목숨을 위협받아온 광해군이 자객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흉내내는 광대를 데려와 허수아비 왕 노릇을 하게 하다, 잠시 몸져 누운 사이 그가 보름간 왕 노릇을 대신하게 된다는 내용은 그럴듯하면서도 역사적 사실들과 맥락을 잘 맞추어 재미를 더한다. 광해군의 선정으로 평가되는 대동법 시행이나 중립외교 시행 등은 광해군의 업적이 아니라 그 광대가 했던 것이며, 때로 폐위의 이유가 되는 왕 답지 않은 처신과 기행 등은 그 역시 왕이 아니라 광대였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보면서도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는 역시 또 하나의 영웅만들기를 통해 재미를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새롭게 재해석되는 조선의 왕들은 모두 비루하기 짝이 없다. 아니, 비단 왕 뿐 아니라 그 어떤 위인전의 위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 시절 완벽에 가깝게 보이던 위인들은 사실은 숨겨진 단점이 있거나, 그들 역시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 드러난 사실이다. 특히 요즈음 들어 기존의 프레임을 깨부수는 작업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작업들로 기존의 위인들은 그 지위를 박탈당했으며, 이전에는 평가절하되던 이들이 도리어 추앙되는 등의 일들을 통해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은 기존의 절대 권력자인 왕이나 위인들의 약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도리어 안도하고 위안을 얻는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일종의 조소가 깔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를 뒤집어 엎을만한 영웅(히어로)를 강력이 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체제를 뒤흔들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대한 염원.

 

광해군은 재평가를 통해 기존의 평가처럼 그저 악하기만 했던 폭군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기존 평가가 다 거짓일 수는 없다. 그는 일부 폭력적인 성향을 띄었을 수도 있고, 고집이 세어 주변 사람들을 말을 잘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그의 모든 행보를 '광대가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치환해 버린다. 지나친 비약일 수 있으나 광대의 기행과 맞물려 광해군은 기존의 폭군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도리어 '조선의 훌륭한 왕'이라는 느낌마저 가지게 한다. 맨 마지막 감독의 문장 몇 마디는 특히 그러한 느낌을 더한다. 광해군은 유일하게 명에게 맞선 조선의 왕이라는 문장.

물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광해군의 이미지를 송두리째 바꾸고자 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단순히 스토리가 재미있고, 연기자가 연기를 잘한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이러한 심리가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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