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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15 시대가 부여한 잔혹한 운명에도 생을 이어간 한 여인의 이야기<그을린 사랑>
링반데룽
사람들은 사랑할 때도 '흥분'을 하고, 미워할 때도 '흥분'을 하고,
즐거울 때도 '흥분'을 하고, 화가 날 때조차 '흥분'을 한다.
비단 '흥분'이라는 상태 뿐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각자 너무나
다른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는 의외로 매우 닮은 현상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감정들은 서로 닮았고 닿아 있다.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영화 '그을린 사랑'은 중동의 극단적인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하나의 원인 변수에 의해서 벌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비극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어머니에게 성애를 느끼는 오이디푸스까지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한 여인이 한 남성을 만나 사랑을 했다'
라는 단순 명제는 차곡차곡 비극과 절망의 스토리로 나아간다.
여인이 사랑한 그 남성은 여인의 가족에게 살해당하고, 그 여인은
그의 아들을 낳고, 억지로 헤어졌다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친아들에게 잔인하게 강간당해 또다시 쌍둥이를 낳고,
그 쌍둥이를 키우는 일련의 스토리는 이미 정상적인 삶의
스펙트럼을 한참이나 벗어났기에 소름끼칠만큼 비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떤 삶의 역경 속에서도 여인은 지지 않고 일어서려 했으나,
시대와 운명은 그녀에게 잔혹했다.
후에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우리는 그녀의 이 극단적인 감정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극도의 미움과 극도의 애정.
그토록이나 농도 진한 두 개의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내면에 품고 그녀는 어떻게 살아갔던 것일까.
삶과 운명은 때로 너무나 잔인하다.
그러나 그 잔인함조차 의도치 아니하였고, 또한 인식치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것 같다.
이러한 비극은 그러나 이 이야기 속 뿐 아니라 현재도 어디에선가
더욱 극적으로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비극을 보며 감동을 받고 아름답다 생각하는 이면에는
바로 그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삶을 똑바로 응시하려 줄곧 애쓰던 그 여인의 눈이 자꾸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을 묻고 싶다.
당신이 그러한 비극 속에서도 생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 여인은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흘러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냥 그렇게.
굳이 원인을 찾지 않아도 원인은 이미 삶 속에 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