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8

일요일 아침 혼자 조조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은 항상 너무나 행복하다.

쌀쌀한 초겨울의 날씨조차도 사랑스럽게 느껴질 지경이다. 다채로운 감정들이 마음을 채우고, 영화를 보며 흘렸던 눈물자국이 얼굴을 채웠다. 눌러쓴 캡모자를 더욱 내려 얼룩진 얼굴을 감추며, 그러나 나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 든다. 귀에서는 나얼의 음악이 마음을 편하게 채우며 이제 막 생성된 여러 감정들을 보온병처럼 감싸안아 준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환상을 쫓고, 허구와 상상 속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여고생 시절과 다를 게 없다. 결혼, 연애, 미래, 직업 등으로 뒤섞인 일상 속에서 나는 점점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나 때로 이렇게 어린 아이로 돌아온 것처럼 좋은 스토리의 영화에 푹 빠져든 후에는 이러한 일상들이 어떻든 상관없는 기분이 든다. “될대로 되라지. 삶 따위!” 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아침을 거르고 영화를 보러 갔지만, 마음이 충만하여 배고프지 않다. 길을 걷는 순간 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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