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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1984년

1984년


1984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지 오웰 (청목,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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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다. 고작 1950년까지밖에 살지 못했던 그가 1984년이라는 구체적인 해를 집어내어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예전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탄복과 충격을 머금으며 읽은 기억이 있기에 이 소설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대와 예측을 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측했던대로였다. 그러나 그 예측대로라는 말의 뜻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충격과 탄복을 나에게 제공해주었다는 말이며, 예상했던대로의 내용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강한 긴장감과 두려움이 엄습했고, 특히 1부와 2부, 3부 등으로 뛰어넘을 때에는 미처 생각치못했던 다음 내용에 계속 충격을 받았다.

'동물농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나지 않으나, 읽은 지 5년도 넘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마지막 장면으로 인간과 돼지의 모습이 혼돈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책도 역시 잊혀지지 않을만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이 책의 내내 등장하는 가상의, 혹은 가상의 것이 아닐 대형을 결국 사랑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암울하고 답답하며 기계적인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무언가 변화를 꾀할 주동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던 주인공 윈스턴이 결국 애정성에서의 고문과 말할 수 없을만큼 여러 가지 고통, 번민 끝에 대형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깊은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흔히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그는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패배하였다. 일개 개인으로서, 전체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며, 그 전체는 너무나 공고하고 단단하였다. 2+2=5라고 믿게 만드는 전체. 어제까지 전쟁국이었던 유라시아가 당장 오늘부터는 동맹국이었다고 믿어지는 사회. 있었던 것들이 증발하고, 없었던 것들이 생겨나며, 나날이 발전되고 있다고 믿어지나 실상은 퇴보하고 있는, 그러나 그 퇴보의 사실을 모두들 망각하고 있는 끔찍한 사회.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회를 조지 오웰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나는 사회주의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흔히들 말하는 좌파에 대해서도 불쾌감이 들거나 하지 않고, 잘은 모르지만, 오히려 흔히들 좌파에 가지는 부정적인 생각에 반발하여 친근감을 느낄 지경이다. 특히 사회주의는 자유주의보다 훨씬 인간의 선함을 믿고, 다 같이 잘 살자는 매우 인간적인 모토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완벽하게 실천된다면 유토피아가 올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완벽한 실천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불완전한 방편으로 자유주의 안에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맞지만 말이다. 그러나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그린 것은 단순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내세운 전체주의이다. 1984년에서 윈스턴을 고문하던 오브리엔은 말한다. "개인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당은 죽지 않고 영원하다." 라고. 여기에서 '당'이라는 것이 바로 '전체'일 것이다. 개인이 말살되고 전체만이 남은 세상. 그러한 세상이 얼마나 비관적으로 펼쳐질 것인지를 오웰은 절망적인 내용으로 그려낸 것이다. 결국 전체 안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은 증발될 것이며, 모든 인간은 전체에 알맞은 인간으로 태어나고 자라며 죽게 될 것이다.

  1984년은 앞서 말한대로 1950년대 이전에 쓰인 소설로 물론 그때와 지금의 사정은 많이 변하였으므로, 오웰이 소설에서 예고한대로의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그가 말하는 몇몇 부분은 아직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화씨911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사실 9.11테러는 부시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런 것이 명백히 진실이라 하기에는 여러 가지 정황이나 증거들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1983년에서 골드스타인이 썼다는 금서에 쓰여 있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부시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전쟁은 승리나 패배를 낳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쟁이 멈추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멈추어서는 안되며,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전체주의의 영원을 보장해줄 것이다.' 우리도 암암리에 알고 있듯 전쟁은 많은 권익자들에게 기여하며,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한다. 이러한 물음은 결국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듯 '전쟁은 불필요한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겠으나, 결국 이 소설에서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전쟁이 전체주의의 유지에 기여한다는 것. 그것이다. 자꾸 지금의 현실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면, 지금의 미국 사회 역시 이 소설에 나온대로의 전체주의 사회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인가. 언젠가 사회과교육의 어명하교수님께서 미국은 melting pot에서 salad bowl로 변화하고 있다고 하였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하나로 끓이려는 시도에서 각각의 개성을 살린 채 조화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미국민들이 변화하는 모습은 사실 많은 세계민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고, 특히 부시를 정점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전쟁에 대한 집착은 매우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며, 그들이 진정 전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것인가 의심하게 한다.

  아무튼 각설하고, 1984년은 이렇듯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지금의 시점에 맞추어 생각될 수도 있으며, 이 말은 우리의 세계 정세가 50년 전에 한 영국 작가가 염려하던 것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발전하지 않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비전체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 안에 살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오웰이 예견한 비극인 것이다.

  또한 논외의 이야기지만, 오웰이 이 이야기에서 끄집어 낸 '신어'라는 개념은 무척 흥미로운 것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단어를 모두 삭제하고 꼭 필요한 단어와 개념만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 우리에게는 good, bad, better, best 등의 단어가 있지만 신어로 하면 이 모든 것은 good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 bad는 ungood으로, better 은 plusgood으로, best 는 doubleplusgood 으로 대체된다. 우리는 이로써 bad, better, best라는 불필요한 단어들을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말 재미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신어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은 개념을 아예 말소시키는 기능 도한 해 낸다. 전체주의 사회가 원치 않은 개념은 아예 언어로 존재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한다'라고 평소에 쉽게 생각했던 한 주장이 다시 한 번 머리에 스쳤다. 즉 언어를 없앰으로써 생각조차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언어의 부재'를 상상하자 곧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무서운 일이었다. 특히나 나같이 말 많은 수다쟁이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오웰은 전체주의의 비극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경험시켜주었다. 읽는 내내 나는 스릴 넘치는 긴장감을 맛볼 수 있었으나, 읽고 나서 엄습해 오는 허망감과 비탄스러운 마음이 웬지 서글프다.






▷ 기억에 남는 부분들

229쪽.

"제 정신이란 통계로 결정한 게 아니야."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평화성'은 전쟁을,
'진리성'은 날조를,
'애정성'은 고문을,
'풍부성'은 아사를 담당하고 있다.


 

 

-2005.01.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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