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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연을 쫓는 아이

연을 쫓는 아이



 

연을 쫓는 아이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할레드 호세이니 (열림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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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오후의 골목길 어귀.
한 아이가 골목길 모퉁이에 반쯤 몸을 숨긴 채 어두운 안쪽을 살피고 있다.
아이는 짧은 반바지에 줄무늬 반팔셔츠를 입고 있으며 왼손은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벽면을 짚고 있다.
아이의 귀는 쫑긋하게 솟아있고, 검게 그을린 뒷목과 팔, 다리가 햇살을 받아 윤이 나듯 빛나고 있다.
맨 발에 신은 하얀 운동화에서부터 길게 뻗은 검은 그림자가 벽면에 길게 드리워
마치 아이와 한 몸이 된듯 바싹 붙어있다.

'연을 쫓는 아이'란 2005년판 책을 보면 위와 같은 표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한낮에 골목길 모퉁이에 서 있는 아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던 표지의 이 그림은 그러나,
이 소설의 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사건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문 소설이라고 한다.
부시에 의해 '惡'으로 만천하에 규정되었으며, 전세계를 적, 또는 지원자로 두고있는 나라.
뉴스에서 심심치않게 그 이름을 들으면서도 결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 나라이다.

             '석유, 탈레반, 전쟁, 이슬람'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나의 스키마(schema)는 위와 같은 단어들로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리라. 
  그러나 이 책을 아프가니스탄인의 현실과 비참함을 고발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한 소년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방황, 도피, 속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책의 뒷머리에 역자인 이미선 씨는  '이 소설에서 성장소설의 모티프가 씨줄이라면 날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전통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탁월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우연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 고통을 겪게 되고 그 고통을 통해 성장하며,
나아가서는 속죄할 기회를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는 이 이야기는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전통, 역사가 없이는 이렇게 빛이 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는 마치 천의 씨줄과 날줄처럼 균형을 잘 잡은 채, 한 소년의 성장기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배경을
맛깔나게 잘 버무려냈다.

  하산과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건, 달라진 관계, 두려움, 도피, 일시적 평화,
속죄의 기회, 용기, 속죄와 평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내용들이 때로는 따뜻한 감정을,
때로는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며 물 흐르듯 이어진다.

  누구나 살면서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것은 아주 어린 시절에 방문하기도 하고, 인생의 중반기에 혹은 황혼기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그 중요한 갈림길은 그러나, 연극의 대단원처럼 웅장한 배경음악을 깔고,
전주곡을 울리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우연히, 그것이 평생에 걸쳐 나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예상조차 하기 힘들만큼 짧게 또 순식간에 나를 찾아왔다 금새 사라져버린다.

  연 날리던 날, 골목길에서의 망설임을 평생 후회하고 고통스러워 하던 아미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를 범하고 그것을 평생에 걸쳐 속죄해야만 했던 바바.
아미르는 항상 아버지인 바바를 거인처럼 느끼고, 경외하였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얻으려 애썼으며, 종국에는 역시 친구이자 형제였던 하산을 버렸고,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 바바를 닮지
않았다고 괴로워했으며, 바바가 그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밝혀지는 비밀 속에 사실은 아미르와 바바가 무언가를 '훔쳤다'는 데에서,
또 나의 표현으로 하자면 '자신이 한 선택을 평생 후회한다'는 데에서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하나의 사건을 평생에 걸쳐 갚아나가려는 진지한 삶의 태도에서도 그들은 너무나 닮아 있다.

  '사람은 고통을 통하여 성장한다'고들 한다.
자신을 위주로 하여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어린 시절에는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하고
때로는 그 행복이 언제나 이어지는듯 착각하여 그것을 당연하게, 또는 지루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날 내가 없이도 혹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장난으로 거대한 고통과 마주하게 대고,
더 이상 내 편이 아닌 세상과 대항하여 그 고통을 극복하는 노력과 과정 속에서 어느새 번데기가 허물 벗듯
하나씩 하나씩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이 이야기가 그 배경을 아프가니스탄으로 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 많은 공감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장소와 시간에 관계 없이
모두가 한번쯤 겪어야 하는 일이며, 모두의 기억 속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때로 내가 후회하는 기억들을 떠올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없던 일로 해버렸던 선택. 평생에 걸쳐 나를 괴롭게 하면서도 그것에 대항하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기억에서 지우려고만 했던 것들. 그러나 그 기억들은 사라진듯 사라진듯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나의 평생을 옭죄는 사슬로 변해버렸을 뿐이다.

 도피는 극복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도망과 망각으로 고통을 잊으려 했던 아미르가 두려움을 마침내 이겨내고,
마침내 그 기억과 당당하게 마주섰을 때의 클라이막스에서 큰 감동과 희열이 느껴지는 것은 나도 모르게
아미르의 모습에 나를 투영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오랜 세월에 걸쳐 넘어서지 못했던 하나의 벽을 넘어선 아미르.
그의 앞에는 앞으로도 많은 선택의 기로가 있을 것이고,
때로는 또 다시 도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벽을 넘어선 그라면 앞으로 이어질 벽 앞에서도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것이라 기대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자신 앞에 마주선 아미르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 이야기의 대단원이며 처음 어린 시절의 추억과 또 가장 핵심인
사건과 동심원 구조로 이어지는 연 날리는 장면이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차가운 겨울 바람을 이기고, 손가락 끝을 온통 베어가며 연을 날리는 아미르와 하산.
머리 속에 그 장면은 이제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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