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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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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A.S 바이어트 (미래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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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시인의 로망스를 추적해나가는 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아내와 삶에 성실하다고 알려진 랜돌프 핸리 애쉬의 메모를 가난한 학자가 발견하고, 이를 추적해 나가며 숨겨졌던 그의 사랑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100여년 전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애쉬와 크리스타벨과 같이 그 뒤를 쫓는 롤래드와 모드 역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잘 짜여져 있고, 문체가 아름다우며 매우 사실적이다. 서로 소유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가. 바이어트가 소설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사랑법에 대한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과거의 두 시인, 또 두 시인의 자취를 쫓는 현대의 학자, 그 학자들을 쫓는 다양한 학계의 인물들 등..

추적에 추적이 꼬리를 잇는 형상은 일종의 긴박감을 형성함과 동시에 소설의 결말에 대한 기대를 모은다. 더욱이 간간이 소설에 알맞게 간을 쳐주는 과거와 현재의 두 로맨스는 소설의 풍미를 더욱 깊게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라 하면,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두 시인의 시에 대해서만큼은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시'라 하는 것은 지극히 언어적이다. 함축적 어휘와 리듬감의 절묘한 조화가 시를 감동적으로 만드는 장치인데 그 세심하고 예민한 장치는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는 작동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예로 나는 우리나라의 무수한 시인들에게서 말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게 마련이지만, 외국 시인들의 경우 아무리 유명한 시인의 시라 할지라도 그다지 감흥을 받지 못한다. 한때 랭보의 시가 뿜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파괴적이고 적나라한 단어 선정에 흠뻑 빠져 그의 시집을 산 적이 있었지만, 그의 시 만큼은 도무지 좋아할 수 없었다. 나는 시를 제대로 읽고 싶어, 그의 전기를 읽었지만 결국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삶이지, 시가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잘못 생각했던 점이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을 알 것이 아니라, 바로 '언어'를 이해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이 책의 역자가 훌륭하게 애써서 번역을 했다 할지라도, '시'라는 것은 다른 언어로 바뀌어 버리는 순간 온몸에 흠뻑 머금고 있던 축축한 매력이 모두 말라버리고, 물기 한 점 없이 따가운 태양 아래 바싹 말라, 만지면 부스러질듯한 어설픈 형체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시'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그 원래의 시를 쓴 작가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의 역량이 필요하리라 짐작된다.

그러므로 신화와 요정, 삶과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 시인들의 시는 내게 있어 그저 아름답게 치장된 액자에 불과했다. 결코 그림 자체에 속하지 못한 채, 그저 그림을 그럴듯하게 장식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소유'의 가장 가치있을 그 부분들이 말이다.

키츠니, 엘리엇이니 이름난 시인들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내 머리 전반을 지배하던 지루함이나 일본의 하이쿠를 읽을 때 드는 어처구니없음이 각국 언어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러나 시를 그저 장식이나 도구로 생각한다 할지라도, 나에게 몇 번이나 '랜돌프 핸리 애쉬'를 실제하는 시인으로 착각케할만큼 생생한 상황을 꾸려나간 스토리와 솜씨좋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 방법에 대해서만큼은 깊이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전반에 흐르는 문학적이고 탐구적인 분위기 역시 섣부르지 않고 정제된 문체와 더불어 나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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