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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독학자

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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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배수아 (열림원,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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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아를 나는 '동물원 킨트'로 만났다. 잠시 사회에 대해 더듬어 보기도 하고 철저히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가끔 고민하기도 하고 세상을 탐닉하기도 하는 그런 류의 소설이라 지레짐작하며 표지를 펼쳤다. 딱히 재밌거나 와닿는 책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저 텍스트를 원하던 때였다. 눈에 텍스트가 와서 박히는 것이 왠지 안정적이랄까. 그러한 류의 편안함을 얻고 싶어 책을 빌렸다. 일종의 killing time이기도 했다.

   그러나 편안함을 얻으려던 당초 나의 의도와는 달리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의 독특한 시선. 아니, 정교한 시선. 눈에 와닿는 텍스트는 나의 눈 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자꾸만 콕콕 찔러댔기 때문에 나는 기댈 곳이 없어 어정쩡하게 서 있는 불안정한 기분이었다.

   현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그러나 작가가 경험했을 80년대를 나는 모른다. 그 즈음에 나는 기고, 걷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붉은 기가 걸려있는 대학가라던가 화염병이 터지는 가운데 난투를 벌이는 대학생과 전경들의 모습이 다분히 상징적으로 떠오른다. 그 당시 내가 대학생이었더라면 앞뒤 생각 잘 못하고 성격이 급한 나 역시 그러한 무리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정치나 사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그 당시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하거나 데모를 하던 것은 당연한 것이며,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하며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행위를 막던 것은 매우 비겁하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작가는 나와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쩌면 정말로 작가 자신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읽는 내내 주인공을 작가로서 생각했다. 비록 性은 다르지만... 둘 이상의 수를 모르는 단순함. 그 어처구니없는 이분의 논리를 냉소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며 더더욱 독학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름답고 편안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의, 어른들의, 친구들의, 부모님의 행위 없는 폭력이나 시선으로 인해 주인공은 철저히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킨다. 잠시 P교수나 S를 통해 어떠한 끈을 닿으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는 결국 독학자의 길을 나선다. 노동은 노동으로서, 공부는 공부로서 하며 자기 자신을 어떠한 시험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내 마음 속 다양한 종류의 '나' 중에서 가장 냉소적인 내가 자주 하곤 하는 생각들. 잘나지도 않은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비웃고 꼬집는 방법들을 작가는 내내 쓰고 있었다. 그것은 작가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항상 속에 숨겨놓고 있는 나를 드러내도록 한 셈이었다. 내가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낀 것은 바로 이러한 데에서 비롯하였다. 속에 잠겨 있어야 할 언어들이 텍스트로서 눈 앞에 펼쳐졌다. 벽을 만들고 스스로를 독학자로 만드는 행위 역시 끔찍하지만 나 자신과 자꾸만 겹쳐졌다.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주인공의 말에 의하면 내 나이는 읽을 나이이지, 적을 나이는 아니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또 적고 있다. 토해내는 것이 과연 글인지, 낙서인지 분간도 하지 못하면서... 글이라고 다 글은 아닌데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다만 그림과 구분되는 글자인지, 의미인지 나도 더 이상은 모르겠다.

   결국은 모두가 독학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안에 숨어있는 독학자를 잠시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불쾌해졌다. 나의 독학자는 이제 다시 숨어들어간다. 독학자는 독학자이기에 '엮이지 않는'-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독학자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독학자를 마음에 품은 나는 독학자가 아니기에 다시 웃을 수 있다.

 

 

 

-2006.02.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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