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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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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예상치 못한 채 거장들의 작품을 대할 때의 기쁨과 놀라움은 어디에도 비길 곳이 없다.
오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인 조르바'를 읽었을 때의 내 마음 역시 그랬다.
이 이야기 속에서 시종일관 침착하게 상황을 응시하는 두목 나으리도,
삶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조르바도 모두 너무나 생생하여 방금 막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반짝이는 물방울을 튀기며 긴박감있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조르바.
그는 '인간' 그 자체였다.
도덕, 관습, 예의, 의무 등은 그에게서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그는 내키는대로 살아왔고, 그 과정에는 단 한번도 거침이 없었다.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어느 독자는 조르바의 엽기적인 기행을 참지 못했는지,
결국에는 책 어귀에다 '미친놈'이라는 메모를 남기고 말았다.
하하, 말 그대로였다.
조르바는 미쳤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용기와 대담함, 무모함 등은 지면과 독자를 압도하였고,
때로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사람은 자기와 이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일단 경계하고
두려워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계를 지나자 이 글의 서술자인 두목(?)처럼
조르바를 부러워하고, 또한 좋아하게 되었다. 뭐, 어디까지나 독자로서의 문제지만...

조르바는 서생처럼 느껴지는 이 글의 화자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이 얼마나 가슴 철렁한 말인가.
조르바의 이 말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양 귓전을 울려서 나는 흥분으로 가슴이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르바는 기인이었지만, 마냥 야만인은 아니었다.
후반부에 나오는 과부의 피살사건이나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에서
마냥 야만인처럼 느껴지는 조르바가 얼마나 인간다운지,
또 문명인인듯 행세하던 이들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잔인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이 조르바는 '인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결코 조르바처럼은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조르바가 두목에게 이야기했듯, 나 역시 자유를 갈망하고 줄을 끊겠다며 큰소리치겠지만,
그저 줄을 무한정 늘릴 뿐이다. 결코 용기있게 줄을 싹둑 잘라내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그러한 조르바의 이야기에 두목은 실망하지 않는다.
그는 대답한다.
조르바가 버찌를 토할 때까지 삼켜 버찌를 이겨냈듯이,
자기는 책을 토할 때까지 삼켜보겠다고...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 얼마나 당당한 대답인지...
그동안 이 작가를 모르고, 이 책을 몰랐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리스 남부의 크레타 섬.
그저 이야기로만 들었던, 막연한 이 곳이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펌프질하며
영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어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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