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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04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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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해마지않는 문학동네소설상의 8회 당선작이다.
제1회 수상작인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서부터 줄곧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문학동네 소설상 당선작임을 알자마자 망설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실수였던걸까?
의외로 이 책은 잘 읽히지 않았다. 영상에 빠져 활자를 소홀히 한 책임을 고려하고서라도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책장이 힘겨웠다.
이 소설은 조금은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어릴적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두 개의 거울이 마주보고 있는 장면.
거울은 거울을 비추고, 거울 속 거울은 또 거울을 비춘다.
거울 속 거울 속 거울은 거울을 비추고,
거울 속 거울 속 거울 속 거울은 거울을 비춘다.
무한히 반복되는 거울의 그림자.
뭐, 무한히 반복되는 데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 하나의 장면이 자꾸만 생각의 주변을 어른거리는 것을 느꼈다.
소설 속 소설. 소설 속 소설의 소설.
반복되는 소설의 내용.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소설을 쓰기로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한 자도 소설을 쓰지 못하는 동안 주변의 많은 이들이 소설을 쓴다.
주인공의 아내, 그녀, L씨, 고등학교 선생님, M군 등.
특히 주가 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소설인데,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또 다른 '그녀' 역시 소설을 쓴다.
특이한 소재의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뒤의 심사평을 읽으니 이러한 재료를 가지고 소설을 쓴 것이
이해경씨 말고도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이야깃거리는 아니랄까.
더욱이 이 소설쓰기의 소설은 각각 등장인물의 익명성으로 인해 혼란을 가중시킨다.
근자에는 소설쓰기란, 혹은 글쓰기란 과거에 비해 대중화되었다고 할까.
인터넷이나 블로그 등의 발달로 대중 속 개인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가 쉬워졌기에
우리는 잠깐의 검색으로 아마추어 작가들의 다양한 글들을 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신작 소설들이 서점을 가득 메우고,
이제는 소설가 뿐 아니라 방송인에서부터 사업가까지 누구나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소설쓰기란 그리 쉽지 않다.
단 한문장의 시작을 찾기 위해 수십권의 책을 주워 삼키지만,
결국 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이 소설을 쓰던 이해경씨의 생각이 비춰졌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앞서나간 생각일런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위기의 남자다.
위기에 위기가 꼬리를 물고 결국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남자.
위기가 가장 고조되는 그 순간 너무나 허망하게 뚫려버린 벽 앞에서
시원함과 동시에 섭섭함을 느꼈다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맺음을 가진 소설이었다.
나에게는...